이웃사랑-뇌출혈 김상호씨

입력 2005-08-03 16: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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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의 덫'에 재산·말 모두 잃어

"여보, 힘들었지. 면목없네. 어떻게든 되돌려보려 했지만 이 현실을 비켜갈 수 없을거 같구려. 아무리 애써봐도 더 깊이 빠지는 느낌이야. 이렇게까지 몹쓸 남편이 돼 버린 거 무슨 염치로 용서를 구해야할 지…. 난 당신 곁에서 참 행복했었는데 당신도 나만큼 행복했나 모르겠구려. 큰 애 나래를 잃고도 꿋꿋하게 견뎌내줘서 고맙고. 우리 착한 둘째 나엘이를 부탁하네. 부디 용서해주시게. 당신을 누구보다 사랑했네."

예전에 남편이 써놓은 글을 보았다. 삶이 너무 힘들었지. 군데군데 흩어지고 지워진 낱말들은 필시 남편의 눈물일테지.

내 남편 김상호(51)씨는 착한 나엘(13)이의 믿음직한 아빠지. 당신은 16년 전 큰 애를 어이없는 교통사고로 잃고도 나 없는 곳에서만 울었던 믿음직한 사내지만 잘못된 보증으로 전 재산을 날리면서도 아내에게는 한 마디 말도 않았던 몹쓸 남편이잖아.

그가 지난 해 초 결국 뇌출혈로 쓰러졌다. 전화를 받고 어느 기도원으로 달려가면서 '부디 살 수만 있게 해달라'고 얼마나 원했는지 모르지. 그래도 살아있어줘 고마웠어.

7년 전 남편은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동료 교사의 친척을 위해 연대보증을 섰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피보증인은 도산했고 곧 집안으로 압류딱지가 날아들었다. 남편은 뇌경색 증세가 왔지만 내게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에게 걱정시키지 않으려 월급으로 이자를 갚고 신용카드로 돌려막기를 했다. 근 1년을 그 사실도 모르고 정상적으로 생활했을 정도였다. 산 속 어느 기도원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남편은 틈나는 대로 막일을 했고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고 그 돈을 모아 생활비를 댔다. 병이 찾아온 것은 당연했다.

20평 집을 팔았다. 8만 원짜리 방 한칸을 얻었지만 그것도 벅찼다. 4만 원짜리, 3만 원짜리 월세집으로 전전했다. 도대체 얼마나 잘못된 것일까. 불어난 이자는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다. 남편은 피보증인의 부도를 막기 위해 사채까지 빌려 쓴 모양이다. 채권자들은 어떻게 우리 집을 알아냈는지 찾아와 협박을 하고 행패를 부렸다. 결국 시아버지의 20평 아파트도 처분했다.

도무지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남편은 말을 잃었다. 10년 전 기억만 하고 있다. 얘기라도 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이 난국을 헤쳐나가보겠는데….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이 닥친 것인가. 특수교육과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장애인들을 위해 목사라는 꿈을 접고 대구의 한 특수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했다. 그런 그가 지난 해 뇌혈관 조형수술에 혈관 이식수술까지 했지만 언어장애에 전신마비 증세까지 앓고 있다.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나엘이도 밤마다 몽유병 증세를 보인다. 그 힘이 얼마나 센지 아무리 말려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애까지 잘못되면 어쩌지. 한 치 앞이 막막하기 그지없다. 남편 기저귀 값이며 휠체어 대여료, 음료수비도 만만찮다.

"아빠, 난 나다나엘(하나님의 선물)이야. 아빠는 보증이란 것이 서서 망했지만 어서 나아서 같이 레슬링 TV 봤으면 좋겠다. 아빠 이제 나보고 자꾸 외삼촌 이름을 부르지마. 난 아빠의 선물이잖아."

박숙자(51·여)씨는 나엘이의 일기장을 남편 김상호(51)씨에게 읽어주며 '힘내 여보'라고 속삭였다.저희 '이웃사랑' 제작팀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 (주)매일신문입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 박숙자씨는 쓰러진 남편이 너무나 안쓰럽고, 병원비가 없어 언제 쫓겨날 지 몰라 불안하기만 하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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