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건물? 눈씻고 봐도…
세계적인 건축 선진도시 싱가포르를 찾았다. 싱가포르는 1인당 GNP 2만6천 달러의 섬나라. 동서간 42km, 남북간 24km거리로 우리나라 서울과 비슷한 면적에 인구는 380만 명(자국인 320만·외국인 60만 명)인 도시국가다. 도심인구는 258만 명으로 대구와 비슷하다.
개인보다는 정부가 부자인 나라로 기초 질서를 우선시하는 나라답게 건축물도 질서정연함 그 자체였다. 스콜성 소나기가 자주 내려 나무와 식물들이 잘 자라는 데다 합리적이고 창의성을 중시하는 건축행정으로 인해 잘 다듬어진 정원과 깨끗한 아파트를 자랑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교육제도와 주택정책에서 탁월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건축정책의 경우는 개성있는 건물, 스카이라인 변화를 강조하면서 건축주나 건축설계사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결과 창의적인 설계가 속속 나와 획일적인 스카이라인을 확 바꿔 놓는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건축가들 방문이 끊이질 않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싱가포르에선 땅은 정부 소유지만 아파트는 99년간 임대, 땅은 999년간 임대형식으로 사실상 부동산 사유화가 이뤄진 상태. 아파트는 임대기간이 끝나면 물가인상분 등을 바탕으로 한 정부 인상률을 기준으로 추가 임대하면 대대로 살수 있다. 상류아파트는 우리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30~40층 높이를 자랑하고 있으며 값도 만만찮다.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에 이어 세계 베스트 2 공항에 오른 창이공항을 출발, 도심으로 접어들면 잘 가꿔진 잔디 위에 어깨를 늘어뜨린 가로수 사이로 솟아있는 고층빌딩에서 싱가포르 도시계획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공항에서 동쪽으로 5분거리인 창이지역은 대표적인 아파트촌으로 현대건설이 최근 준공한 아파트가 노변에 위치해 있고, 인접한 곳에 쌍용건설이 지어 지난 5월 싱가포르 건설대상 주거건물 부문 설계분야 최우수상을 받은 '창이 라이즈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다. 창이 라이즈 아파트(Changi Rise Condominium)는 29~97평형 598가구로 야외 수영장, 인공 백사장, 소극장, 물미끄럼틀 등을 갖춘 리조트형이다.
싱가포르의 대표적 주택가인 주롱의 공단주변 아파트단지에는 정부가 지은 아파트의 80%가 위치하고 있다. 값이 매우 비싸 20평형이 2억 원 정도 가며, 개인 주택은 2층으로 돼 있는데 한 건물에 두 가구씩 살고 있다. 이곳 아파트 가격은 3억 원에서 20억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카통에는 비교적 오래된 페라나칸 양식의 주택들이 위치하고 있고, 현지인들 생활현장을 볼 수 있는 섬 북부의 위성도시 이순(Yishun)은 아파트와 쇼핑몰, 식당가, 할인매장, 마을공원 등이 함께 어우러진 대표적인 주거단지로 유명하다.
북동쪽에 위치한 정부 아파트가 집중 위치한 탐피네스 지역은 뛰어난 주택 설계로 "유엔 세계 주거지역 상"을 받은 곳으로 유명하다. 학교, 상점, 시장, 아름다운 놀이터, 두 개의 골프코스, 수영장, 배드민턴장, 운동장 등 주민들이 원하는 모든 시설을 갖추고 있다.
대표적인 상업지역은 공항 남쪽에 있다. 금융가로 불리는 선텍시티(Suntec City), 최고급호텔인 레퍼슨호텔과 쌍용건설이 1980년대 초에 건설해 세계 최고층 호텔로 기네스북에 오른 73층 규모의 '웨스틴 스탬포드 호텔(Westin Stamford Hotel)'이 위치하고 있다.
정부 주택공사(HDB·Housing and Development Board)는 공영택지 개발과 서민 아파트 공급(분양)을 맡고 시공은 민간업체에 넘겨주는 방식으로 아파트 값 거품이 생길 여지를 차단하고 있다. HDB는 1960년대부터 영구임대주택 건설을 시작했으며, 20년 전인 1980년대부터는 아파트 리모델링 체제로 접어들었다.
HDB 관계자는 1960년대 주거난 해소, 1970년대 내실·미관 고려, 1980년대 주거환경 최우선, 1990년대부터 리모델링 주력 등에 초점을 맞춰 아파트를 짓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중 리모델링은 주차장을 지하화하는 등으로 생활 편의성을 꾀하고 토지 효용도 높이는 한편 녹지공간 확대, 새로운 주거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특히 입주민들이 이주하지 않고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 리모델링 건축물을 더욱 확대해나가고 있다. 현장에서 건물을 개·보수하는 게 아니라 공장에서 특정 부위의 유니트를 생산해 기존 아파트로 가져와 부착, 조립하는 방식으로 공사기간을 줄이고 있다.
HDB가 건설한 서민 아파트는 주로 대중교통 이용이 쉬운 시내에 위치하고 있고 가격은 30평 기준으로 1억~1억5천만 원선. 민간업체가 지은 시외곽 고급아파트(7억~8억 원선)보다는 훨씬 싼 편이다.
현재 싱가포르 도심에 건설 중인 HDB의 50층 높이 아파트는 전 세계 건축사들 간 경쟁공모를 통해 선정한 설계도를 바탕으로 오는 2009년 준공된다. 11~79평형 1천800가구 규모에 3개 동(棟) 옥상으로 다리를 놓아 조깅트랙은 물론 화재시 비상대피로 기능을 하면서 조망권도 충분히 확보, 올해 초 분양에서 100% 분양률을 기록했다. 주공아파트라고 해서 결코 설계수준과 마감재가 떨어지진 않는다. 우리나라 고급 민간아파트에 도입하고 있는 홈네트워크시스템과 초고급마감재를 모두 적용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또 다른 HDB 아파트 모델하우스에는 30평형과 40평형이 선보이고 있었다. 30평형은 거실을 포함해 방 4개, 40평형은 5개. 이곳 아파트의 특징은 에어컨 실외기가 밖에서 보이지 않는 것. 건축심의 때 미관을 따지기 때문에 아파트마다 내부에 별도의 환풍로를 만들고 실외기를 설치하고 있다.이 같은 양질의 아파트를 매년 다량 공급한 결과 국민의 80%가 자기집을 소유, '주(住) 걱정 없는 나라'로 불리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로부터 건축물 인·허가 관련 업무를 위임받아 처리하는 기관이 국토개발청(URA)이다. 이곳을 찾으면 누구나 건축물 인·허가 관련 사항을 친절하게 안내받을 수 있다.
아파트나 주상복합건물을 지을 때 우리나라처럼 교통영향평가, 건축심의, 사업승인, 분양승인을 받기 위해 행정관청을 찾을 필요가 없다. 섹터별로 용도지역, 용적률, 건폐율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URA홈페이지(www.ura.gov.sg)에 들어가 건축할 지명을 치면 해당 지역의 용도, 용적률, 건폐율 등이 상세히 나타난다) 한도 내에서 건축물을 설계해 전자문서로 URA에 신청하면 4주일 내에 인·허가 여부를 통보받는다. 분야별 심의위원회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대학교수 등이 아닌 행정기관 자체에서 처리를 하게 된다.
특히 한도를 초과해 설계한 경우에도 심의위에서 어느 정도 조절한 뒤 인·허가를 해준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심의위도 우리나라처럼 2주일 또는 한 달에 한 번씩 여는 것이 아니라 서류가 접수되는 대로 열어 사업자의 인·허가처리 및 일정을 최대한 단축해준다.
싱가포르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노라면 건축심의가 굉장히 까다로울 것이라고 예상하겠지만 사실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또 싱가포르에서는 같거나 비슷한 모양의 건축물은 허가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지만 이도 사실과 다르다. 허가가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건축설계사 및 건축주들이 창의성과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모양의 건축물을 짓지 않는 것이다.
싱가포르 건축심의에서는 건축물의 모양은 보지 않지만 아파트단지의 인구밀도 등은 엄격히 따진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민원 발생을 이유로 인·허가를 미루는 일도 생겨나고 있지만 싱가포르에서는 민원과 건축 인·허가와는 무관하다. 일조·조망권 등과 관련된 민원 자체가 없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층고와 도로로부터의 이격거리 등에 대해 제한 규정은 있지만 이 또한 심의위원회에서 강제로 결정할 사항은 못 된다. 주어진 수치만큼 물려 건물을 배치하면 심의위는 그대로 통과시킨다. 동(棟)간 이격거리도 주어진 규정대로 적용하면 아무런 규제를 하지 않는다. 교통영향평가와 건축과는 별개의 문제로 여기기 때문이다.
황재성기자 jsgold@imaeil.com
사진: 싱가포르 도심. 스카이라인을 고려한 빌딩들이 건축 선진도시임을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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