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太洙 칼럼-믿을 만한 말들을 듣고 싶다

입력 2005-08-02 10:49:13

'대통령의 말' 혼란 불러서야 / 정치적'전략적 '억지' 지양을

말은 세상과 더불어 시작됐다. 세상을 낳았다. 말은 세상을 만드는 사상을 담고 있는 그릇이자 그 방식이기 때문이다. 태초부터 그렇게 말이 있었다. '인간 세계를 낳은 말은 사상이며, 사상은 말이다'라는 하이데거의 견해도 같은 맥락이다. 이때의 말은 깊은 사상과 비전을 끌어안고 있는 '나직한 담론'이거나 그와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니체는 '폭풍을 일으키는 건 가장 조용한 말이며, 비둘기의 발로 오는 사상이 세계를 좌우한다'고 갈파한 바 있다. 말의 진정한 효능에 대한 성찰로 읽힌다. 말잔치가 아니라 될 수 있는 한 말을 줄이고, 침묵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을 때만 말을 하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말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의 깊은 사고, 진실과 확고한 믿음이 담보돼야 한다. 그렇지 못한 말은 오히려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갈등을 부르거나 그런 부채질을 하기 십상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부쩍 더 그런 소용돌이 속인 것 같다. 날이 갈수록 화해나 희망의 말들보다는 갈등이나 절망의 말들이 무성해진다. 특히 최고 권력층 인사들의 절제되지 않는 말들이 혼란을 가중시키고, 그 파장은 온 나라를 뒤숭숭하게 흔들어대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역 구도 해체 등을 내세운 '대연정' 제안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그런 말들의 끝은 안 보인다. '한나라당 주도'를 주장하며 정권까지 내놓겠다고 하다가 여야 모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그 빛깔이 또 다소 달라졌다. '선거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등 발 빠르게 말을 바꿨다. 더구나 '대연정 제안은 반대급부이고, 진정으로 제안한 것은 선거제도를 고치자는 것'이라고 했다.

한술 더 떠서 '귀담아 듣지 않고 거역하면 정치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 말은 거의 '협박' 수준으로 읽힌다. 비판이나 비난에도 '요즘 더 나빠진 게 뭐냐'는 식의 말은 또 어떤가. 이 같은 정치적'전략적 '억지'에 공감할 이들이 과연 어느 정도나 될는지…. '민심이 천심'임을 아랑곳하지 않은 말들이 아닌지 모르겠다.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여당마저 엇박자를 보이고 있는 까닭을 모르는 건지, 알고도 딴청인지, 오로지 정치적 욕망과 그 목적만 우선인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그 '말빚'들을 국민이 짊어져야 하고, 그에 따르는 갈등이나 고통 역시 국민 몫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 또한 포퓰리즘의 한 방법론이라면 해도 너무한다.

'탈무드'에는 혀에 얽힌 일화들이 적지 않다. '행복 비결'을 파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날, 한 상인이 거리에서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판다고 외쳤다. 많은 돈을 주겠다는 아우성이 넘칠 때, 뜻밖에도 그 비결이 '자기 혀를 조심하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 혼란을 부르는 말들은 이 일화 속의 '행복 비결'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 두부를 사온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나라 어른의 말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럴진대, 대연정에 관련한 대통령의 말들을 어느 모로 봐도 고와 보이지 않는다. 최근 일련의 말들이 고도의 정치 전략적 소산이지,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말들로 들리지 않는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거짓말은 아니라 해도 위헌 소지까지 있음에도 거침없이 나오는 말들 속의 진실을 헤아릴 수가 없다. 말 속에 진실이 적으면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신뢰가 무너지게 될 건 뻔한 이치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가 말하듯이, 진실하지 못한 말은 큰 파국을 부르게 마련이다. 그런 말들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꼬리에 꼬리를 물게 돼 있으며, 끝내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발을 빼지 못할 지경의 수렁에 빠져들게 한다.

휴가를 끝낸 뒤의 대통령은 새로워지기 바란다. '나직한 담론'의 미덕도 잊지 말기를 권한다. 선동 정치, 흘리기 정치, '눈 가리고 아웅'식 정치에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쳐 있다. 끼리끼리 문화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민은 무성한 말잔치와 특정 세력의 권력 잡기'유지가 아니라 경제를 살리고 외교를 잘하는 정치 지도자들을 원하고 있다. 믿을 만한 말들, 진정한 희망을 안겨주는 말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천심에 눈 가리고 귀 막지 않는 '나라의 어른다움'을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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