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울림장터 이야기

입력 2005-08-01 11:18:15

한 번씩 냉동고 문을 열 때마다, 혹은 장롱에서 옷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 이상의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냉동고에 너무 오래 저장된 음식물은 나중엔 결국 그냥 버리게 되고, 옷장의 옷들은 1년 내내 한 번도 입지 않아 옷장을 지키고만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울림장터'이다. 조금씩 덜 사고, 아직은 더 쓸 수 있지만, 내게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물건들을 모아 나누어 쓰는 만남의 장을 생각했다. 장터는 삶의 현장이고 축제의 장이다. 거기에는 먹거리와 놀이가 있고, 음악이 있고 만남이 있다.

먼저 주위에서 쓰던 물건들, 옷가지, 책, 학용품 등과 생활용품들을 기증받았다. 집안 구석구석을 지키고만 있던 많은 물건들이 정리되어 장터로 나왔다. 그래도 명색이 장터인지라 새상품의 건어물과 과일'떡이며 여러 종류의 차(茶), 유기물 농산물을 구입해 구색을 갖추었다. 어느 작가는 도자기 작품을 기증해 주셨고 상(喪)중에도 불구하고 장아찌를 담아 주신 분, 자기 일처럼 나서서 김치를 담아주신 분도 계셨다.

그리고 장터가 열릴 때마다 환상적인 팀이 되어 도와주시는 교회 권사님들의 녹두전'감자전, 그리고 온갖 야채전은 인기 그만이었다. '음악과 함께하는 장터'라 장이 열리는 내내 음악이 있었다. 파이프오르간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고 장이 걷힐 무렵에는 함께 어울려 노래도 불렀다. 무엇보다 코너마다 자원해 일해주신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의 강행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질 않았다.

당일 팔고 남은 상품은 '아름다운 가게'로 보내졌고, 수익금은 돋움공동체와 좋은 문화 만들기를 위한 기금으로 사용되었다. 울림장터는 1년에 두 차례 열린다. 어쩌면 이 일은 환경의 날에 봉투 하나씩 들고 집 주위의 담배꽁초를 주워보는 일처럼 상징적인 일 밖에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한번씩 장터를 열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격려한다. 피켓을 들고 지구를 살리자고 나설 정도의 적극적인 방식은 아니겠지만 우리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소한의 자기 몫만 해도 세상은 얼마나 살 만한 곳이겠는가. 우리 아이들이 살아야 할 땅, 우리 아이들이 누려야 할 삶의 공간이 지금보다는 더 나은 내일이기를 꿈꾼다.

이상경 오르가니스트·공간울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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