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만천지 정착 '낚시광 부부'…양명석·정지희씨

입력 2005-07-30 09:11:07

# 낚시광 부부가 사는 법

그저 낚시가 좋아 낚싯대에 남은 삶을 덥석 맡겨버린 한 부부가 있다. 얽힌 도시 생활을 과감히 접고 도심에서 멀찍이 떨어진 의성 만천지 옆에 터를 잡았다. 참 별나다. "낚시에 웬만큼 미치지 않고서는 이런 짓 못합니더." 양명석(47)·정지희(37·여)씨 부부 이야기다.

막상 떠나오긴 했지만 생계는 꾸려야해 양씨 부부는 '만천쉼터'라는 간판을 내걸고 조그만 슈퍼를 운영하고 있다. 만천지에 찾아오는 낚시꾼이나 동네 주민들에게 밥 장사도 한다. 실컷 낚시만 하자는 막연한 기대는 한낱 꿈인 듯싶다. 양씨는 "우째 도시에 살 때보다 더 시간이 안 나네요"라며 푸념이다. 그래도 별다른 근심걱정 없는게 어딘가. 연일 땡볕에 새카맣게 얼굴이 그을기는 해도 그들의 미소 속에는 여느 도시인들보다 넉넉한 삶의 여유가 묻어있다.

#"딴 짓 하는가 싶어 따라다녔죠"

"우리 부부의 낚시 얘기는 네버 엔딩 스토린데." 양씨가 말을 잇는다. 고향이 포항이라 자연스레 낚시와 인연을 맺은 양씨. 그저 취미 정도로 여기던 낚시에 가랑비에 옷 젖듯 물들기 시작했다. "낚시에 한번 빠지면 놀음보다 더 심하다 하잖아요. 낚시 이게 서서히 사람을 미치게 합디더." 신혼여행을 갔다온 직후 바로 낚시 가방을 둘러메고 일주일 외박을 할 정도였다.

부인 정씨는 황당할 수밖에. 신혼의 단꿈을 생각하던 정씨는 속이 시커멓게 탈 수밖에 없었다. 정씨는 "남편이 그저 낚시 다녀온다고 하고 여러날 외박하니까 혹시 딴 짓 하는게 아닌가 싶어 뜬 눈으로 밤을 샛죠." 그렇게 정씨는 5개월 가량을 끙끙 앓기만 했단다. 지겨울 정도로 부부싸움을 하다 결국 할 수 없이 정씨는 남편을 따라다니며 팔자에도 없는 낚시와 인연을 맺었다.

#부모 직업이 낚시꾼?

막상 정씨는 대물 밤낚시를 하는 남편을 따라가긴 했지만 컴컴한 밤에 그저 앉아있는 짓이 영 체질에 안 맞았다. 처음에 정씨는 너무 무서워 울기도 하고 보채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온 남편의 반응은 시끄럽다며 자동차에 가 쉬라는 매정한 얘기 뿐. 그러다 얼마 안돼 정씨는 어깨 너머로 배운 솜씨로 고기를 한마리씩 건져올리기 시작했다. 양씨는 "낚시에 꽤 재능이 있더라고요"라며 정씨를 추켜세운다.

그렇게 낚시에 재미를 붙인 정씨는 '물 만난 고기'가 되었다. 남편 양씨와 쉼없이 전국의 낚시터라 할 만한 곳은 모두 헤집고 다녔다. 나중에는 아예 늦둥이 아들 기대(11)까지 옆에 끼고 다녔다. 기대가 3살 때는 영천 유상지에서 한달 가량을 지낸 적도 있고 낚시터에서 밤을 꼬박 새고 허겁지겁 기대를 학교까지 태워다주는 일도 허다했다. 그러다보니 기대가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일어났다. 기대가 생활기록부에 부모 직업을 낚시꾼이라고 기재한 것. 요즘은 부모 입에서 '낚'자만 나와도 친척집에 맡겨놓고 가라고 선수친다고.

#"간이 안 좋아? 낚시나 실컷 하자."

양씨 부부는 서로 약속까지 해두었다. "나이가 들면 못가에 가서 집을 짓고 낚시를 실컷 하자고." 하지만 기회(?)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찾아왔다. 1995년 양씨가 간이 안 좋아 쉬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은 것. 양씨는 '절호의 찬스다' 싶어 인테리어 일을 그만두고 부인과 함께 10년동안 낚시터를 전전했다. 양씨는 "좀 벌어놓은 것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죠. 그 땐 무슨 열정이 나왔는지"라며 당시를 떠올린다. 하지만 전국을 돌아다니는 일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점점 몸이 못 배겨 냈다. 그래서 지난해 1월, 아예 이곳 만천지 인근으로 살림을 옮겼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곳이 '만천쉼터'이다.

요즘 양씨는 낚시대를 거의 못잡는다. 식사를 나르고 설거지하는 등 슈퍼 일에 매인데다 올 초에 낚싯대 세트를 몽땅 잃어버려 의욕이 사라졌다고. 그래도 양씨는 "비수기인 겨울쯤엔 여유를 봐서 바다낚시를 갈까 생각 중입니더." 반면 부인은 틈틈이 만천지에서 낚시를 즐긴다. "낚시를 한동안 못한 남편보다 오히려 솜씨가 더 낫지 않겠어요"라고 큰소리도 치면서. 양씨는 작은 바람을 내비쳤다. "장차 이곳을 이름 그대로 낚시꾼들을 위한 쉼터로 만들고 싶습니더." 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사진 : 다정하게 설거지를 하는 양씨 부부. 화려하진 않지만 시골에서 소박하게 사는 게 이들 부부의 사는 법이다.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