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뺨 맞는 시어머니

입력 2005-07-29 11:12:08

문화와 가치관'관습은 각기 다를지라도 어느 사회나 그 구성원들 간에 지켜 나가야 할 불문율이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넘지 말아야 할 금기의 선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미개한 사회라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불문율이 무너질 때 그 사회는 심각한 혼돈에 휩싸이게 된다.

○…27일 밤에 방영된 KBS2 일일 시트콤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 전국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공영방송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린 탓이다. 맞벌이 아들 내외를 위해 손자를 돌봐 주던 할머니가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온 사이 어린 손자가 국그릇을 엎질러 손에 가벼운 화상을 입었다. 병원 응급실로 달려온 아들 부부. 젊은 며느리는 대뜸 "애를 어떻게 봤냐"며 시어머니의 뺨을 철썩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어머니가 눈물을 쏟으며 아들에게 하소연하자 아들도 "어머니가 잘못했잖아요"라고 타박했다.

○…그날부터 이 드라마 홈페이지 게시판은 "공영방송이 미친 것 아니냐?"는 시청자들의 항의로 부글부글 죽 끓듯 끓어오르고 있다. 담당 PD가 "부모자식간 갈등의 극단을 보여 줘 경각심을 일깨우고 싶었다"고 해명했지만 시청자들의 분노는 쉬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가뜩이나 노인 학대가 심각해진 요즘이다. 늙고 병들고 힘 없는 부모를 멸시하고 구타하는가 하면 쓰레기 내버리듯 부모를 버리는 자식들도 있다. 얼마 전 대구에선 남편과 불화를 겪을 때마다 일흔이 넘은 시어머니를 때려 분풀이한 며느리의 폭행 사건이 사회 문제화된 바도 있다. 2002년 인권위원회 조사로는 전국 65세 이상 노인의 37.8%가 한 번 이상 자식들로부터 학대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생을 가족 뒷바라지하느라 빈 껍데기가 된 몸으로 결혼한 자식 집에 끊임없이 반찬거리를 날라다주고, 사업 실패하면 퇴직금이며 쌈짓돈까지 탈탈 털어 주고, 굽은 허리로 손자 손녀까지 돌봐 주는 노인들. 서구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의 부모들이다. 하지만 자식 세대의 사고는 '내 아내(남편), 내 새끼'뿐이다. 문제의 드라마 장면은 안방극장이 패륜 행위를 여과없이 내보냈다는 점에서 비난받을 만하지만, 한편 우리 사회 노인 학대의 심각성을 드러내 준다. 고령화로 치닫는 우리 사회가 하루 빨리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부모에 대한 패륜은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 일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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