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시평-남북작가대회의 의미

입력 2005-07-27 09:57:04

'역사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가 20일부터 25일까지 5박6일간 평양과 백두산·묘향산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끝났다. 1945년 12월 13일 이기영을 비롯한 북쪽 문인들이 남쪽에 내려와 남북을 포함한 통일적인 민족문학자 조직을 결성하기 위한 총회를 열고 '전국문학자대회' 개최를 결정한 다음 다시 북으로 넘어간 후 60년 간 남북의 작가들은 만나지 못했다.

하나의 모국어로 같은 민족의 정서를 노래하는 문인들의 분단은 지난 1988년 7월 2일 남측 민족문학작가회의측의 남북작가회담의 전격 제의와 1989년 3월 27일 고은·백낙청·신경림·현기영·김진경 등 남측대표단이 판문점으로 향하다 전원 당국에 연행되면서 남북작가들의 교류의지는 막을 내렸다.

이번에 열린 남북작가대회는 분단 이후 최초로 열린 공시적인 남북작가회담으로 모국어문화권의 온전한 회복과 남북 자가들의 마음속 깊숙이 남아있는 분단의 질곡을 극복하고 문학의 통일을 통해 종래 민족통일의 주춧돌이 되고자하는 기원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남측 방북단의 구성은 염무웅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비롯 고은·신경림·백낙청·임헌영·황석영 등 진보적인 문인뿐 아니라 신세훈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김종해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 진보·보수를 아우르는 문인 80여명이 참가했다. 북측에서는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인 장혜명 시인과 오영재·리호근·홍석중 등 수십 명이 참가했고, 미국·일본의 문인 등 총 150여 명의 남북 및 해외작가들이 참가했다.

지난 20일 오전 11시 40분 인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정확히 50분 뒤인 12시 30분에 비행기는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불과 50분이면 올 수 있는 짧은 거리를 60년이 걸려서야 밟을 수 밖에 없는 민족분단의 쓰라린 상처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고개를 드는 순간 공항청사 지붕에 걸린 커다란 김일성 주석의 초상화가 우리들의 방북을 실감케 했다.

일행은 곧바로 평양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고려호텔로 갔다. 이곳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남측 실무팀으로부터 '북측을 자극할 수 있는 발언은 가급적 삼가한다', '양 김씨(김일성 주석·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는다'는 주의를 듣고 대회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애초 옵저버 자격으로 참가하기로 했던 해외문인들에게도 공식적인 당사자 자격을 줘 남북, 해외문인들이 함께하는 남북작가대회로 만들자는 북측의 주장에 대해 남측에서 이것은 애초 합의한 상황이 아니라고 반대하면서 논란이 벌어져 처음부터 대회 일정이 늦어졌다.

대회장인 인민문화궁전 회의실에 오후 6시 남측 문인들이 입장하니 100여명의 북측 문인들이 좌석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이들은 벌써 3시간째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해외문인 참가문제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회담장 양측 벽면에는 붉은 글씨로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을 자주적으로 이룩하자!' '애국애족의 필봉을 높이 들고 6·15 공동선언실천에 떨쳐나가자' 등의 글귀가 분위기를 띄웠다.

오후 7시 30분 남북측 의장단이 단상에 입장하면서 드디어 대회가 시작됐다. 여기서 남북과 해외 대표들이 나와 3개 사항에 대해 합의했다. 남북과 해외문인을 통틀어 '6·15 민족문학인협회'를 만들고 '6·15통일문학상'을 제정하며 기관지 '통일문학'을 창간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첫날 모든 일정이 밤 12시쯤 끝났다. 숙소인 고려호텔로 돌아오기 위해 인민문화궁전을 나서자 평양 시가지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가로등도 없고 그 많은 아파트에서도 불빛 하나 새어나오지 않았다.

둘쨋날부터 북측은 평양 용성구역에 있는 정인보, 이광수 등 재북인사 62기의 묘가 있는 묘역을 공개했다. 하지만 참관인 수를 제한해 어쩔 수 없이 남측 작가 중 연장자순으로 20여명만 참관해 나머지 젊은 문인들의 불만이 높았다. 이 자리에서 춘원 이광수가 폐결핵으로 사망했다는 문학사적 사실도 확인됐다. 넷째날 새벽 5시 남북문인들은 백두산 정상에 올라 '통일문학의 새벽' 행사를 시작했다. 백두산 정상에서 서쪽에는 채 지지않은 둥근달이 푸른 빛을 내며 마치 수정처럼 밝고 투명하게 빛나고 동쪽에서는 운해를 뚫고 떠오르는 일출이 그야말로 일대 장관을 이루었다. 고은 시인이 "여러분 지금 백두산 정상에는 달과 해가 함께 떴습니다. 남과 북도 해와 달처럼 함께 어우러져 통일 이룩해야 한다"고 즉석에서 강연했다. 일정 중 백두산 밀영에 있는 정일봉 아래서 불순한 언동을 했다고 해서 북측으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지만 무사히 일정을 끝냈다. 이제 비로소 문학에서 남북화해의 작은 첫 걸음을 뗀 것이다.

김용락 시인·경북외국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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