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개탄 "아이고 내 팔자야…"

입력 2005-07-23 11:12:40

어제는 불법 도청 문제가 초점이더니 오늘은 결국 97년 대선 때의 검은 정치자금으로 불똥이 튀었다. 고민하던 MBC가 하룻밤 새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홍석현 현 주미대사가 중앙일보 사장 시절이던 97년 대선 직전에 이학수 현 삼성그룹 부회장과 논의, 여야 대선 후보들에게 100억 원대의 불법자금을 제공했다는 거다. 국정원과 재벌과 흘러간 두 대통령, 그리고 이번엔 언론까지 탁수(濁水)에 휘말렸으니 국민 입에선 "아이고 내 팔자야…" 개탄의 소리가 절로 나지 않겠는가.

본란은 되살아 난 도청 공포의 망령과 소위 '빅3'를 중심으로 한 언론 권력에 대한 국민 불신의 증폭을 우려하고, 또 이 폭로에 대한 재벌 삼성의 자기중심적 반응을 서글퍼한다. 동시에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바 "이게 왜 지금 터지나?"하는 '음모론'에 착잡하고, 무엇보다 이 땅의 지식인'가진자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추락, 아니 '몰락'을 보는 국민 여러분의 고통에 가슴이 아프다.

당장에 '도청 공포'는 현 정권의 국정원이 아무리 "콩으로 메주를 쑤고 있다"고 해도 믿을 사람이 없게끔 돼 버렸다. 국민이 안 믿는 국가기관은 존립 자체가 흔들릴밖에 없는 것이다.

MBC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일부 거대 언론이 언론의 본질을 망각하고 정치에 개입했다는 얘기가 되고, 따라서 국민이 유일하게 '믿는 구석'이 발등 찍혀 버렸다는 점에서 언론 종사자 모두 부끄러움과 함께 자신의 족적(足跡)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다짐하는 계기가 돼야 함을 느낀다.

보도된 대로 당시 홍석현 사장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삼성 돈 수십억 원을 전달해 주는 '퀵 서비스'를 한 게 사실이라면, 그리고 '노후 보장'으로 DJ 후보에게까지 양다리 걸친 게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흥보가 기가 막혀'다. 우리는 이것이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몰락이 아니길 믿고 싶다. 따라서 홍석현 주미대사는 "대세의 흐름에 맡기겠다"고 선문답할 게 아니라 'X파일'의 진실을 밝히길 바란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의무다. 당연히 삼성 또한 진실 규명의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삼성이 언론의 폭로에 격앙만 한다면 그건 국민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방귀 뀐 쪽이 왜 성내나?

어쨌든 곪은 건 터져 버렸다. 이 와중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호떡집에 불 난듯 실눈 뜨고 득실(得失) 계산하고 있을 걸 생각하면 그 또한 볼썽 사납다. 또 국회가 와글와글하겠지만 결론은 "국민은 알고싶어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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