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분산배치가 혁신이다

입력 2005-07-21 11:44:42

정부는 지방으로 이전할 공공기관을 혁신도시에 모두 수용해야 한다는 방침을 거듭 밝히고 있다. 혁신도시가 아니면 공공기관 이전과 관련한 재정 지원을 일절 않겠다, 기능별 2, 3개 군으로 나눠 집중 배치하는 것도 안 된다는 강경한 지침을 마련할 것이라 한다. 정부의 이 같은 혁신도시에 대한 집착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완강한 것이다.

정부 주장은 혁신도시를 만들어 공공기관을 모아두는 것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생활 자족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시너지 효과도 크다고 덧붙인다. 일리가 없진 않지만 다양한 기관들을 몽땅 혁신도시라는 한곳에 몰아 넣는 것은 모양새만으로도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화이트칼라 그룹인 공공기관 본사들을 블루칼라들이 주역인 공업단지처럼 한곳에 집중시키는 것이 온당할까. 효율성도 그렇다. 성격과 기능이 서로 다른 기관들을 모아 놓는 것이 업무의 효율성과 무슨 상관이 있나. 수도권'행정도시에 대한 근접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본래의 뜻을 훼손시킬 뿐이다. 타파해야할 수도권 집중과 중앙집권적 관행을 유지하려는 발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업무 추진의 편의보다 종사자들의 KTX 통근과 기러기아빠를 양산해서 지역에 뿌리내리는 데 장애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물론 수도권을 떠난 종사자들의 불편 해소를 위한 환경 개선은 필수적이다. 그것을 혁신도시에서 이룰 것이 아니라 낙후지역에서 이루어내는 것이 진정한 균형 발전의 토대다. 예컨대 경북 북부지역에 공공기관이 입주해서 주변 환경이 개선되고 기존 학교가 명문으로 발돋움하는 등의 혜택을 지역민이 함께 나눌 때 공공기관 이전 본래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 아니겠는가. 사람이 살면 길은 만들어진다. 그것이 진정한 시너지 효과다.

그런 기대 속에서 시'도 내 시'군'구들이 공공기관 유치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일부 시'군은 사활을 건 듯하다. 도로공사 유치에 나선 상주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도로공사가 이전해 오면 임직원 700여 명에게 한 사람당 매월 20만 원의 지역농산물 상품권을 지원하고, 문화마을의 전원주택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뿐만 아니라 수도권과 상주시를 잇는 셔틀버스 운행, 공원과 각종 문화행사 무료입장, 생활안정자금 이자 전액 지원 등 가히 파격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농산물 상품권값만도 연간 17억 원에 달한다. 실현 여부에 논란이 있으나 기초단체의 공공기관 유치 열망이 어느 정도인가 짐작하게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시군도 이런 열망을 갖고 있다.

경북도가 정부의 강경 입장에도 불구하고 분산배치를 강력 건의한 것은 잘한 일이다. 면적이 넓고 상대적 낙후지역이 많은 경북도의 입장에선 공공기관의 적절한 배치로 지역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려는 의지는 필요하고 또한 평가돼야 한다. 구미공단과 포항철강공단이 경북도 차원을 넘어 국가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청송'영양 사람들이 이들 대형 공단이 도내에 있어 큰 덕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시너지 효과가 안동'예천에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정부는 지방의 현실적 이해관계를 이해하고 혁신도시에 대한 터무니 없는 고집을 풀어야 한다.

그리고 공공기관들도 스스로 균형발전의 대의를 위해 자기 희생의 모범을 보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불만스럽고 화도 나겠지만 사기업이 아닌 공공기관이니까 국민은 주문하고 부탁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대한석탄공사가 노사 합의로 강원도 태백시를 이전 우선협상지역으로 선택한 것은 훌륭한 결정이다. 지방이전 대상 176개 공공기관 가운데 최초로 스스로 이전 후보지를 선택했다. 석탄공사 노사는 "석탄산업 사양화로 공동화되고 있는 태백시의 회생을 위해 석탄공사가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대한광업진흥공사,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 등 자원 관련 공공기관들이 모두 태백으로 이전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수도권 가까운 곳이나 도청 소재지 같은 큰 도시 대신에 산골이나 다름없는 태백을 선택한 것은 공공기관 이전의 전범이 될 만하다.

엄청난 예산이 소요될 혁신도시에 대한 정부의 욕심이 다소 줄기를 기대한다.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키로 한 것이 혁신이라면 시'도가 공공기관을 분산 배치하는 것도 혁신이다. 전국이 혁신도시가 되면 더 좋지 않은가.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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