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진압, 손보겠다, 맞장 뜨자, 후퇴 없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용어들이다. 연일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리는 걸 보면 무슨 큰 싸움이라도 난 듯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08학년도 서울대 입시안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대학에서 오가는 표현들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상아탑이라고 불리는 대학의 학생 선발 방안을 두고 최고의 엘리트라고 자처하는 청와대 관료와 정치인과 교수들이 벌이는 진흙탕 싸움의 파편들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그것도 지방의 학생과 학부모들의 입장에서 보면 짜증스럽다. 아무리 서울대 입시안이 전체 대학입시 판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해도 이제 서울대를 이슈로 만드는 건 그만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서울대를 문제 삼는 그들 대부분이 바로 서울대 출신인지라 과연 싸우는 건지, 서울대의 위상을 새롭게 세우자는 건지 하는 의심도 있다.
고교 교사들은 논란의 전제부터 틀렸다고 꼬집는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최상위권 학생들을 싹쓸이하려는 서울대'라고 인정하고 싸움을 벌이는 건지 웃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대 학과들의 입시 서열은 예전과 비교하면 달라져도 한참 달라졌다. 서울대가 상위 3%니 5%니 독식한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복수지원, 논술과 심층면접, 취업난 등이 맞물리면서 서울대라는 간판 하나 보고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예전보다 확연히 줄었다. 당장 정시모집 합격선만 봐도 알 수 있다. 연·고대 상위권 학과들의 경우 과거에는 서울대 중위권 학과 정도에 합격선이 위치했지만 지금은 서울대 법학과 다음이 고려대 법학과이고, 계열로 모집하는 연세대 사회계열은 서울대 사회계열 바로 다음에 합격선이 잡힌다. 자연계로 가면 더 심하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대부분 의대, 한의대, 약대를 선호한다. 서울대는 안중에 없다. 아무리 서울대라고 해도 학과에 따라서는 상위 10%선에 합격선이 맞춰진다고 한다.
이런 판국이니 서울대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학생들을 뽑기 위해 통합교과형 논술고사 어쩌고 하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오히려 문제 삼고 싶은 건 모집정원의 30%를 뽑는 지역균형선발전형이다. 사회적 배려 차원에서 도입했다고 하는 제도인데 실상은 전국의 모든 고교 1등을 싹쓸이하겠다는 발상이다. 지역균형선발의 합격선인 서울대의 내신 환산점수 190점 정도라고 하면 고교 3년 동안 전 과목에 걸쳐 최상위권을 유지해야 받을 수 있는 점수다. 전국 곳곳에 숨어있는 재능 있고 창의적인 인재를 뽑는 게 아니라 공부를 가장 잘 하는 학생들을 입도선매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서울대에 얽힌 논란을 대학 운영 자체에 맞추는 것이 합리적이다. 신입생을 어떤 방식으로 뽑느냐 하는 지루한 논쟁보다 서울대가 과연 국립 서울대학교 설치령에 따라 국가의 지원을 받는 만큼 우수한 학생들을 양성하고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서울대에서 배출하는 인력들이 대기업으로부터 외면받고, 서울대를 3년, 4년 다닌 학생들이 의대에 가겠다며 늦은 재수를 선택하는 현실부터 비판하고 들어야 한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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