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돌리는 친구·어른들 미워요"…청소년 쉼터 아이들

입력 2005-07-19 11:35:19

청소년 쉼터에 살면서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태연(가명·14)이는 지난 12일 억울한 누명을 덮어썼다. 전날 오후 3시쯤 대구시내 한 초등학교 교실에 누군가 침입, 교사의 학생기록부를 조작하고 교실 바닥에 온통 케첩을 뿌리는 등 난장판으로 만들고 도망쳤다.

마침 이를 목격한 한 재학생이 지난해 졸업앨범에서 '범인'으로 태연이를 지목했고, 이튿날 청소년 쉼터를 찾은 초등학교 학생부장(48·여)은 "사실인지 확인부터 하자"는 쉼터 관계자의 만류에도 "네가 벌인 일이 아니냐?"며 태연이를 다그쳤다. 하지만 사건 당시 태연이는 친구들과 축구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목격 학생의 말만 믿었던 학생부장의 오해였던 것.

해당 교사는 "태연이는 재학 당시 폭력신고가 3, 4건 접수될 만큼 문제학생이었다"며 "오해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식 사과하겠다"고 했다. 태연이가 속한 중학교 유도부 담당교사는 "태연이에게 과거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 너무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5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마저 가출해 고아 아닌 고아가 된 태연이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깊을대로 깊어졌다. 태연이는 "초등학교 시절 폭력을 휘두른 것도 쉼터 동생들을 괴롭히는 다른 아이들과 싸운 것"이라며 "쉼터에 산다는 것이 왜 죄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불우한 가정 속에서 방황했던 아이들은 마지막 귀착지로 청소년 쉼터를 선택하지만 '쉼터 아이들'이라서 겪는 고통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민수(가명·14·초교 5)는 2주째 학교에 가지 못한다. 또래보다 2살이나 많지만 친구들이 수시로 따돌리고 때리기 때문.

민수가 담임 교사에게 하소연했지만 "네가 먼저 친구들을 괴롭히니까 그러는 것"이라며 오히려 핀잔만 들었다. 민수는 5살 때 아버지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사고를 당해 정신지체아가 됐고 아버지는 자살, 엄마는 가출한 뒤 치매증세가 있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지금 민수는 학교도 포기한 채 쉼터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부모의 사실혼 관계에서 태어난 진희(가명·12·여).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뒤 아빠와 같이 노숙생활을 전전했던 진희는 결국 쉼터를 찾았다. 진희도 학교에서 구타와 따돌림을 견디지 못해 쉼터에서만 지낸다. 취재진과 만났을 때 "친구들이 너무 밉다"며 눈물을 쏟았다.

청소년쉼터 우옥분 원장은 "쉼터 아이들은 불우한 가정 속에서 욕설을 배우고 도둑질도 하는 등 방황하다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과연 부모있는 아이들이라면 사회와 학교가 이처럼 편견에 가득찬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청소년 쉼터의 아이들은 친구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주위에서 조그만 범죄만 발생해도 오해를 받기 일쑤다.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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