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해방구 동성로 로데오 夜한 밤 풍경

입력 2005-07-16 12:55:09

주말 밤을 목매 기다리는 사람들은 동성로로 나간다. 외곽은 어둠이 깊숙이 가라앉아 황량하기조차 하지만 동성로의 로데오 거리는 어둠이 짙어질수록 화려하다.

밤 11시 로데오 거리의 ㅈ클럽.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하나 둘 줄을 서기 시작한다. 그 전까지 따분해하던 직원들의 손길이 바빠지면서 주민등록증 검사를 하고 5천 원짜리 입장권을 판다. 한번 들어가보려 마음먹었지만 입구서부터 막는 검은 양복의 아저씨들.

"30살이 넘으면 못 들어가요. 나이든 사람들은 자꾸 딴 목적(?)으로 들어와서요". 짐작은 갔지만 괜히 서글퍼지는 것은 왜일까. 할 수 없이 기자라고 양해를 구한 뒤 입구에 들어섰다.

그러자 눈앞에 펼쳐진 예상치 못한 그림. 강렬한 비트음과 쉼없이 돌아가는 오색 조명이 바깥과는 다른 별천지임을 보여준다. 빼곡이 자리잡은 젊은이들은 모두 힙합 음악에 심취해 열심히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5개월 전부터 자주 이곳에 들린다는 김은주(20·여·북구 산격동)씨는"남들 눈치 안보고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딱이예요. 쉽게 또래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요"라며 흥분된 표정이다. 정성훈(20·북구 대현1동)씨는"나이트클럽은 보통 몇 만원씩 하는 반면에 이곳은 5천 원만 내면 마음대로 춤추고 음악을 들을 수 있어요. 무척 실속있죠. 요즘 친구들도 이제 나이트클럽 안 가고 클럽으로 모이고 있어요"라고 거들었다.

클럽 안에는 그저 다른 이들의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시끄러운 음악에 아랑곳않고 맥주 한병을 시켜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젊은이들도 있다. 이곳에서는 몸치도 얼굴을 가릴 필요가 없다. 박수만 치거나 남 눈치 안보고 그야말로 막춤을 추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게 보이니까.

푸른 눈의 외국인들이 자주 눈에 띄는 것도 클럽의 또 다른 특징. 미군 리처드(25)씨는 금요일, 토요일 밤은 친구들과 거의 이곳에서 보낸다고 했다. 이곳 분위기는 '베스트'이고 한국여자들에 대해서는 '정말 이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인근의 ㅂ클럽·ㅈ클럽과는 달리 규모는 작지만 젊은이들로 가득차긴 마찬가지. 이마에 고인 땀을 닦는 김희진(21·여·수성구 지산동)씨는"술은 맥주 한 두병이 고작이죠. 4, 5시간 동안 신나게 놀면 한주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확 풀려요". DJ 백진욱(29)씨는 "최근 로데오 거리에만 3, 4개가 더 생겼어요. 업소가 늘면서 사람들도 많이 찾아요"라고 클럽의 인기를 설명했다.

훌쩍 자정을 넘겼지만 로데오 거리의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건물마다 네온사인이 더욱 반짝이고 젊은이들은 줄어들지 않는 '야행성족'의 세계다.

입구부터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비는 ㅋ송바(song-bar)는 노래로 승부한다. 안에는 빈 자리가 없을 만큼 인기 만점. 이곳은 노래방의 변형된 형태로 호프집에 노래방 기기와 무대를 마련해놓았다고 보면 된다. 술을 마시며 노래를 예약하고 자기 순서에 무대에 올라가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대부분 노래 한가락하는 사람들이 무대를 차지하지만 가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무대에 오르는 이들도 있다. 돼지 멱따는 소리(?)도 나오고 때로는 필을 받아 혼자서 막춤을 추며 난리 부르스란다.

무대에 올라 막 노래를 마치고 내려오는 이미영(26·여·동구 신매동)씨를 붙잡았다."노래방에 따로 갈 필요도 없고 술 먹고 노는 걸 한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동성로의 밤은 20대 젊음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특히 주 5일제로 바뀌면서 30·40대 직장인들도 그 틈바구니를 찾아든다. ㅋ라틴바 앞에는 '살사댄스를 무료로 배울 수 있다'는 문구가 있다.

홀을 중심으로 주위에 좌석이 배치되어 있는 구조. 홀에는 댄스에 열공(열심히 공부한다는 뜻)하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끊고 강사와 함께 신나게 몸을 흔드는 사람들. 그 중의 한명인 헤어디자이너 곽명철(31·서구 평리동)씨는 "예전부터 살사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 바가 생기고부터 자주 찾는다"고 했다.

또 다른 ㅍ바. '27세 미만은 들어오지 말라'는 문구가 있다. 20대 젊음의 거리에서 색다른 마케팅인 셈이다. 너무 어린 사람들이 들어오면 시끄러워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를 준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고객은 30·40대 직장인이라고.

바텐더 김애리(26·여·중구 삼덕동)씨는"대부분 이 부근이 20대 위주 영업이지만 여기는 조용하고 여자 바텐더들이 하나하나 챙겨주니까 나이가 좀 든 분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특히 애인이 없는 직장인들의 선호도가 높은편. 김명호(37·북구 산격동)씨는"이 시간이 되면 30대는 시내에 갈 곳이 마땅찮은 데 여기는 분위기가 딱 우리와 맞네요. 내일 걱정없으니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로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새벽 1시30분, 아직 로데오의 거리는 불빛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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