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 프라모델 마니아 박재홍(36)씨

입력 2005-07-16 10:12:14

토요일 오전, 아빠들에게 슬그머니 조여오는 불안감이 있다. "아빠, 놀러가자". 아이들 참새입에서 이 말 한마디가 나올까 벌벌 떠는 아빠들, 주목하시라. 박재홍(36·경산 하양읍 금락리)씨 가라사대, "프라모델(플라스틱 모델)만 있으면 주말이 끝."

박재홍씨는 자신을 미친 사내로 소개했다. 박씨가 작업장이라고 소개한 4평 남짓의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저절로 '미친 것 맞군'이라는 독백이 나온다. 방안 곳곳을 가득메운 온갖 프라모델 박스들. 박씨는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나와있는 탱크 모형의 반은 갖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은근슬쩍 목에 힘을 준다.

"저거 모으는 돈으로 차를 샀다면 아마 에쿠스 정도는 샀을 걸요"(쓴 웃음). 우중충한 작업장이지만 없는게 없다. 각종 공구는 물론 색색들이 물감, 붓, 부품걸이 등. 꼭꼭 숨겨놓은 돋보기까지 꺼내보인다. 이 작업장이 박씨의 보물 1호라고. "한때는 로봇이나 비행기도 조립했지만 이제는 탱크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있어요."

그러면서 장식장 안에 진열해놓은 자신들의 역작을 하나하나 꺼내보인다. "제 혼이 담긴 작품들이죠"라며 조심해서 만지라고 심하게 눈치까지 준다.

박씨가 프라모델에 본격적으로 손을 댄건 1997년부터. 초등학교 때도 잠시 모형과 씨름을 하기는 했지만 그저 어린 나이의 호기심 정도지만 지금은 그 때와 다르다. 그저 호기심을 넘어서 당당하게 취미라고 자랑할 정도가 됐다. "남들은 그저 모형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박씨가 프라모델에 투자하는 시간은 매일 3시간 정도. 일 마치고 짬짬이 시간을 낸다. 보통 완성할 때까지 2주 이상 걸리는 중노동이다. 웬만한 인내심이 없으면 속이 터질 정도지만 차근차근 프라모델에 도전하다보면 자연스레 인내심도 생기고 차분해진다고.

박씨가 여태껏 완성한 작품은 100여점이 넘고 동호회 회원들이 인정하는 걸작도 10여점이 넘는다.

이렇게 정성을 쏟으니 프라모델에 대한 애착은 불보듯 뻔한 것. 자칫 아이들이 장난하다 부수기라도 하는 날이면 눈물이 날 만큼 열이 받친단다. 그래도 어쩌랴. 폭력아빠가 될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미리 아이들에게 만질 수 있는 모형과 없는 모형을 철저하게 구분시켜 가르친다.

그래도 못내 마음에 걸리는 건 '아이들까지 있는데 아직 프라모델을 주물럭거리냐'라는 주위의 색안경이다.

박씨는 "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하나의 철저한 여가생활의 하나로 취급받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모형에 대한 인식이 안좋다"며 처음에는 무척 기분이 상했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견딘다고 했다.

하지만 프라모델의 장점을 말하면서 조금씩 음성이 높아지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무엇보다 주말에 자녀들과 같이 만들어 볼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장점입니다. 주말에 어디 멀리 나가는 것보다 3, 4천 원짜리 프라모델 하나 사놓고 아이들과 부품들을 주물럭거리면 한 재미 하죠. 아이들과 공감대도 생기고요." 아이들과 같이 만들면 과학 교재로도 손색없고 자동 완구의 경우 야외에서 작동시키면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 없다고.

아이들은 그렇다 쳐도 부인 장형임(33·여)씨의 반응은? "일단 남들처럼 술먹고 딴 짓(?) 안하니까 좋아요"라고 운을 떼며 슬쩍 박씨의 눈치를 살피더니 "취미활동하는 것도 좋지만 프라모델한다고 평일에 종종 늦게 오니까 한번씩 부부싸움이 되더라구요. 한창 프라모델을 만들 때는 신경도 좀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라며 속내를 비친다. "시간만 좀 지키면 대체로 찬성이에요. 아이들과 같이 만들고 보여주면서 의견도 나누고…". 결국 적당히만 하면 가족이 화목해지는데 한몫한다고 결론을 지었다.

▨ 고수가 귀띔한 TIP

박재홍씨는 프라모델을 한번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기억해야 할 팁(tip)을 가르쳐주었다. 박재홍씨가 8년간 갈고 닦으면서 익힌 노하우들이다. 이것만 염두에 두면 프라모델을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단다.

첫째 비싼 키트(kit)는 사지 마라. 그냥 보이기에 근사하다고 덥석 2, 3만 원을 훌쩍 넘는 키트를 사면 후회하기 쉽단다. 혹 잘못 손을 대 실수를 하거나 완성하지 못하면 본전 생각이 나니까. 저렴한 키트부터 사서 부담없이 즐기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키트를 개봉했다면 끝까지 완성해라. 보통 키트를 조립한답시고 개봉을 했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다른 걸 또 만지는 일이 있단다. 이런 일은 절대 금물. 일단 손을 떼면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므로 개봉했다면 완성시킬 때까지 조립을 해야 한다.

셋째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을 찾아라.혼자 즐기면 이내 흥미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동호회와 같이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게 중요하다. 서로 정보 교환도 하고 회원들끼리 자주 만나다보면 만드는 실력도 늘고 훨씬 즐거워진다는 것. 모형대회나 콘테스트에 참가하는 것도 추천하고 싶단다.

아카데미과학 대구·경북총판 053)744-9293. 스케일모형 053)627-9856. 하비랜드 053)425-7866.

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사진:박재홍씨가 돋보기를 대고 탱크 모형을 만드는 모습.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