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놓으면 살리라-심후섭

입력 2005-07-16 10:51:46

장마철이다. 퇴계(退溪) 선생과 우복(愚伏) 선생이 후학을 가르쳤다는 고산서당(孤山書堂)에서 금호강을 바라보니 제법 짙은 흙탕물이 흘러간다. 물풀이 아래로 쓸리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문득 어린 시절 고향 냇가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마을 아이들은 하루 종일 마을 앞 냇가에서 놀았다. 물이 맑을 때에는 송사리도 잡고 가재도 잡았다. 그러다가 홍수로 물이 불어나면 떠내려오는 나무를 건지기도 하였다. 헤엄치기는 덤으로 즐겼는데 물살이 세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아래쪽으로 적당히 떠내려가서는 밖으로 기어 나와 다시 뛰어들기를 반복하곤 하였다.

그런데 도시에 살던 한 아이가 방학을 맞아 우리 마을로 놀러왔다가 그만 변을 당하고 말았다. 함께 멱을 감았는데 집에 가려고 밖에 나와 보니 그 아이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마을사람들은 그 아이가 꽤 멀리 떠내려갔을 거라며 강 아래쪽을 샅샅이 훑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나흘 뒤에 흙탕물이 빠지자 그 아이는 발견되었는데 어이없게도 그 아이가 처음 물에 뛰어든 곳에서 채 1, 2미터도 되지 않은 곳이었다. 전혀 짐작하지 못한 곳에서 발견된 데 대해 마을사람들은 크게 허탈해 하였다. 그 아이는 물속에서 물풀을 얼마나 많이 그러쥐었는지 좀처럼 떼어낼 수 없을 정도였다. 아마도 그 아이는 빠지자마자 당황한 나머지 떠내려가지 않으려는 데에만 신경을 써서 물풀을 꽉 그러쥐었고 끝내 그것을 놓지 않았던 것으로 보였다. 힘이 빠지면 놓을 만도 한데 이 아이는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끝내 놓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이때 이 아이가 손을 놓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모르기는 해도 떠내려가는 모습이 발견되었을 것이고, 그러면 무슨 수가 생겼을 것이다. 왜 놓지 못했을까?

나는 문득문득 40여 년 전의 그 일을 떠올리곤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 안타까움 속에는 물론 나의 부끄러움도 포함되어 있다. 너무나도 허망하게 이 세상을 떠난 그 아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과연 그 아이와 다를 바 있는가? 과연 나는 이 세상의 여러 부질없는 끈을 굳게 잡고 있지는 않은가? 편견과 집착에 사로잡혀 미혹에 빠져있지는 않은가? 그렇다. 나 역시 온갖 끈을 부여잡고 일상의 여울목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정작 놓아버려야 할 것을 도리어 더 꼭 붙잡은 채 아집에 빠져있는 것이다.

영악하고 재빠른 원숭이를 잡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한다. 속이 들여다보이는 투명 호리병에 사탕을 넣고 그 병을 나무에 묶어두면 된다고 한다. 원숭이들이 그 병 안에 들어있는 사탕을 잡게 되는데 사람이 나타나도 주먹을 빼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나타나면 손을 빼내고 도망을 가야 하는데 사탕을 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봄 사무실에서 가까운 수성교 아래의 웅덩이에서 사람들이 팔뚝만한 가물치를 잡는 것을 본 적 있다. 큰물이 지자 아래쪽에서 물을 따라 올라왔던 가물치들이었다. 물이 빠져나갈 때에 함께 흘러갔더라면 살아났을 텐데 강바닥에 생겨난 좁은 물웅덩이에 엎드려 작은 휴식에 만족하다가 결국은 생명까지 잃게 된 것이었다.

한때 서랍이 달린 나무 쌀통이 많이 사용되던 때가 있었다. 그 서랍 틈으로 생쥐 한 마리가 드나들며 떨어진 쌀알을 물고 갔는데 이 친구는 자신의 몸이 커졌음에도 억지로 그 틈을 드나들다가 마침내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고양이 밥이 되고 만 것을 본 적 있다. 역시 적당한 시기에 놓아버리지 못한 때문이었다.

놓으면 살리라. 부질없는 일상의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놓는 순간의 아쉬움과 허망함이 아무리 크다 해도 놓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여전히 놓아버리지 못하고 무얼 더 잡을까 두리번거리는 나의 욕심과 집착을 어이하리!

심후섭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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