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입력 2005-07-13 08:58:01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말라

높게

날카롭게

완강하게 버텨 서 있는 것

아스라한 그 정수리에선

몸을 던질밖에 다른 길이 없는

냉혹함으로

거기 그렇게 고립해 있고나

아아 절벽!

이형기(1933~2005) '절벽' 전문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그것을 초극하려는 실존입니다. 이 시의 '절벽'은 '높게/ 날카롭게/ 완강하게 버텨 서 있어서' 그 수직적 자세부터가 자질구레한 일상성을 단호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시인(깨어있는 의식)은 지금 자신을 고립의 정점에 아슬아슬하게 세웁니다.

그곳은 '몸을 던질밖에 다른 길이 없는' 한계상황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현 존재의 고독하고 고립된 모습을 보며 전율합니다. 그 전율은 안일한 일상에 젖어있는 우리들에게 우레 같은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시인은 그러한 충격으로 우리들의 일상성을 깨뜨리고 잊었던 본래성을 깨우쳐주는 게 아닐까요?

이진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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