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과 음모의 세계사/조엘 레비 지음·서지원 옮김/휴먼&북스 펴냄
영국 작가 조엘 레비의 '비밀과 음모의 세계사'는 역사를 움직이는 숨은 힘에 관한 책이다. 공식적 역사에서는 역사를 움직이는 힘으로 왕이나 대통령 같은 최고 권력자와 장군, 혁명세력 그리고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일반 대중의 여론 등을 들지만, 사실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따로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근본 취지이다.
그 힘은 최고 권력자를 뒤에서 조종하는 개인 또는 조직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는 첩보원들의 정보 전쟁일 수도 있다. 혹은 '비스마르크와 독일 통일의 비밀'에서 보듯 한 개인의 약간의 트릭이 전체 정세를 바꾸어놓은 경우도 있다.
이 책은 이처럼 공식적 역사 이면에 숨은 음모와 비밀, 스캔들을 파헤쳐 역사를 움직이는 진짜 동인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있다. 중세 비밀결사 프리메이슨부터 미국의 이라크 침공까지 전 역사를 아우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책의 백미는 1, 2차 세계대전 비사와 세계대전 이후 현대 사회를 좌우하는 검은 권력의 폭로에 있다. 조작과 음모, 살인과 거짓 보도 등으로 점철된 현대사의 비리는 현대 사회가 이상적인 민주 정치에 한 발씩 다가가고 있다고 믿는 소박한 사람들에게 분명 큰 충격을 안겨줄 것이다.
역사를 움직이는 진정한 힘은 국익 혹은 집단 이익과 결탁한 검은 권력이다.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충격적으로 밝혀지는 것은 전후 나치 전범들과 미국 CIA의 결탁이다.
전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수백만의 인명을 빼앗은 나치 전범들이 종전 직후 CIA의 도움으로 중남미로 피신하거나 신분을 감추고 미국에 당당히 입국했다. 뿐만 아니라, 재산을 보호받고 안전한 은신처와 버젓한 직장까지 구할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화려한 전쟁사 이면에 긴박한 정보 전쟁의 승리가 있었다. 나폴레옹도 알고 보면 비밀리에 첩보원을 고용하여 정보를 얻은 덕분에 승리를 했고, 나폴레옹을 패배시킨 영국의 웰링턴 장군 역시 프랑스군의 암호를 해독해냈기에 전쟁에서 이겼다. 전쟁 수행시 양동작전은 적에게 정보를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첩보 전쟁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2차 대전의 승패가 갈리는 분기점이 된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수많은 양동작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쟁이 끝난 후 냉전시대에 돌입하여 두 세계 간에는 이른바 '우주 전쟁'이 펼쳐지는데, 여기에 또 미국의 추악한 역사가 숨어 있다. 독일의 뛰어난 과학 기술과 인적 자원을 손에 넣으려는 미국의 발빠른 행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페이퍼클립 작전'이라 불리는 이 작전으로, CIA는 독일에서 로켓 개발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유수한 과학자들의 신상명세를 수정해 미국 비자를 받게 하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하여 1969년 마침내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 이루어지고, 아폴로 11호를 쏘아올린 새턴 로켓을 제작한 전 나치군 과학자 폰 브라운은 미국의 영웅으로 화려하게 재등장한다. 그는 악명 높은 피네문데 기지에서 영국 민간인 수백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프로그램을 지휘한 장본인이었다. 폰 브라운 외에도 페이퍼클립 작전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과학자들의 상당수는 악명 높은 생체실험에 참여하고 포로들을 조직적으로 살해하는 등 훨씬 악랄한 사람도 있었다.
이 책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역사의 큰 스캔들을 되짚어보고 여기에 제기되는 음모론을 소개하고 있지만, 음모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음모론이든 아니든, 역사의 미궁을 파고 들어감으로써 독자에게 진정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하는 흥미로운 물음을 던지는 책이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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