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청송 보호감호소 역사 속으로

입력 2005-07-01 11:07:02

지난 1981년 신군부에 의해 만들어진 이후 이중처벌과 인권 문제로 숱한 논란을 낳았던 청송보호감호소가 지난달 29일 국회의 관련법 폐지 통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청송감호소와 질긴 인연의 끈을 이어왔던 청송군 진보면 사람들이나 피보호감호자들, 교도관들은 이에 대해 환영하면서 청송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길 바랐다.

지난달 30일 때마침 특별사면으로 가출소하는 피보호감호자 33명을 만났다. 올해 49세인 익명의 남자는 출소와 감호소 폐지 소감을 묻자 차분한 목소리로 "만감이 교차한다"며 입을 열었다. 보호감호 처분을 받은 지 약 4년 만에 출소하게 됐다는 그는 "몹쓸 죄를 지었지만 보호감호처분은 너무 가혹했다"고 말했다.

인내하기 힘든 기나긴 이중처벌의 형기였으며 변명 같지만 징역형만 복역하고 출소했다면 그만큼 사회적응도 빨라 벌써 새 삶을 살 수 있었을텐데 속절없이 시간만 흘려보낸 것 같다며 지난 세월을 회상했다.

그는 또 "범죄자의 인권을 운운할 마음은 결코 없다"면서도 이곳 출소자 80%가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재수감되는 예를 들며 "그냥 잡아 가둬두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보호감호는 진작 없어져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발길을 돌렸다.

감호소 안에서 만난 고참 교도관 김모씨도 비슷한 뜻을 내비쳤다. 보호감호제는 중범죄자들을 사회와 격리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교화시키고 갱생의 길로 가게 하는 데는 사실상 무용했다는 것. 그럴 바에야 차라리 없애는 게 맞고 이 기회에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인적인 애환도 털어 놓았다. 이 곳에서만 18년을 중범죄자들과 부대끼다 보니 수줍던 성격이 때론 자제가 힘들 정도로 거칠고 사나와졌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청송주민들, 특히 감호소가 있는 진보면민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외지사람들에게 청송에서 왔다하면 으레껏 악명 높은 감호소 얘기를 들춰내는 탓에 기막히고 화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 주민 박성문(56·진보읍)씨는 "물 맑고 인심 좋은 청송이 감호소가 생긴 이후에는 사람 살 곳 못되는 고장으로 취급 받기 일쑤였다"며 "이제 그 오명을 씻을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반겼다.

청송군 김윤태 총무과장은 "이 기회에 감호소와 한 울타리에 있는 청송 1, 2교도소의 명칭도 개칭하도록 해 청송군이 교도소와 감호소로 인해 오해 받았던 이미지를 완전히 쇄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청송 감호소·교도소 대신 그 곳 자연 마을 이름인 양정(養正) 감호소·교도소로 변경해 줄 것을 법무부에 요청하겠다는 것. 말 뜻도 '올바름을 기른다'는 것이어서 교정시설과 썩 잘 어울릴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진보면 출신인 박종욱 경북도의회 의원은 "일부 주민들이 감호소가 없어지면 교도관과 면회객들이 줄어 인구감소와 지역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도 하지만 이는 기우"라고 일축했다. 감호소가 직업훈련교도소 등으로 전환될 것이 분명해 교도관 감축은 미미 할 것으로 보이고 설혹 완전 폐쇄돼 현재 근무하는 160여 명이 모두 감축된다 해도 그 것으로 잃는 것 보다 고향의 명예으로 회복하는 득이 크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렇듯 청송 보호감호소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은 이유는 제각각 이지만 감호소가 없어진다는데 대해 환영 일색이었다. 감호소는 그 만큼 부정적이고 암울한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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