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법고창신

입력 2005-07-01 08:48:24

예식장을 찾았다. 하객들 틈으로 겨우 자리를 잡았다. 신랑신부 입장, 현란한 복장으로 긴 칼을 찬 안내양이 신부의 드레스를 잡아 올렸다. 행여 다칠세라 고이 접어 올린 드레스 속에서 속살이 삐져나왔다.

식장을 압도하는 축포, 강렬한 굉음을 타고 의기도 양양하게 입장하는 모습. 한사람은 어깨가 떡하니 벌어진 위풍당당한 '돈키호테'요, 또 한 사람은 하얀 드레스에 입술을 가린 천하의 '대장금'이다. 신랑신부 맞절. 신랑의 허리는 반 너머 휘어졌고 신부의 머리는 치켜든 해바라기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3회 복창 실시, '신랑은 신부를 안고 앉았다 일어났다' 10회 실시. 그리곤 숨 가쁘게 늘어진 혓바닥으로 신부의 입술을 보기 좋게 훔친다.

연이어 이번엔 신부 차례다. 곱게 바른 연지에다 시뻘건 입술이 다시금 덩치 큰 신랑의 큰 코를 덥석 물었다. 점입가경, 한바탕 박장대소가 이어진다. '폭소클럽'도 이런 '폭소클럽'이 없다.

시아버지도 장모도 배꼽을 틀어쥐었다. 다만 참다못한 할아비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인생의 첫출발, 그렇게 생의 서곡은 시작되고 한바탕 신명의 축제는 막을 내렸다. 현대판 예식의 모습, 20여년 전 내 결혼식을 생각하면 많이도 변해 버린 풍경이다.

신랑신부 입장. 잔잔히 흐르는 행진곡 속에서 두 집안의 어른은 목례로 촛불을 밝혔다. 구석 어디선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신부의 고운 뺨엔 한 두 방울의 눈물이 매달리기도 했었다.

새로운 인연의 탄생, 보내고 맞이하는 슬픔과 기쁨이 사랑으로 거듭나는 순간, 신부는 얼굴을 붉혔고 신랑은 고개를 숙였다. 이렇듯 의식이 축복을 지배하는 거룩한 시간, 그 어디에도 헐렁한 웃음이나 괴성은 없었다.

인생의 시발, 서로를 공경하듯 신랑신부의 맞절엔 그리도 자주 두 머리가 부딪쳤던 그런 예식이었다. 격세지감, 복잡한 도심지를 가로질러 하루 한 번도 아닌 두 번의 혼례식을 신명으로 접한 그날 밤, 나는 진한 먹으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을 휘갈기고 있었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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