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대역전? 노력의 결과죠"

입력 2005-06-30 10:55:16

이렇게 살아요-영천 '배박사' 안홍석씨

대구에서 포항으로 가는 길목인 3사관학교 인근, 영천시 고경면 창하리 용수농원. 쌍둥이 같은 Y자 형태의 배나무가 도열한 채 낯선 방문객을 맞는다. 나무의 키는 어림잡아 5m 정도. 둘레도 어른 팔로 한아름이다.

농원의 전체 넓이는 3천500여 평. 과수원치고 그리 큰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곳은 평범한 농원이 아니다. 올 가을 국내에서 처음 선보일 예정인 '붉은 배' 등 최첨단 유기농법의 고품질 배가 자라고 있는 '경쟁력의 산실'이다.

살구 크기만큼 자란 열매에 봉지 씌우기작업을 하느라 구슬땀을 흘리는 농장주 안홍석(57)씨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배 박사'다. 농림부와 농협, 환경농업단체 등이 주최하는 전국 친환경농산물 품평회 과일부문에서 상을 도맡아 수상했는가 하면 중국 정부 초청으로 지난해에는 중국에서 배 재배법 영농교육도 수차례 했다.

그렇지만 경력으로만 따진다면 그는 아직 '초보' 수준. 지난 1995년 대구에서 가전제품 대리점을 운영하던 중 빚 보증을 잘못 서 사업에 실패한 뒤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과수재배에 뛰어들었다.

"무식한 사람이 겁이 어디 있습니까. 과일은 물만 주고 비료만 주면 되는 줄 알았지요."

독학으로 시작했던 첫 해 농사는 보기 좋게 실패. 그러나 실패에도 이골이 난 덕에 그냥 주저앉지 않았다. 대신 우연한 기회에 인연을 맺은 유기농법에 매달려 관련 서적을 읽고 전국의 전문가를 찾아 다니며 교육을 받았다.

배 재배법 연구에 매달리기 시작한 지 1년여, 그가 내린 결론은 유기농 퇴비였다. 농한기를 이용해 활엽수의 낙엽과 참나무 숯, 깻묵, 콩대, 볏짚, 한약 찌꺼기, 계란 껍질 등 20여 가지의 재료를 버무려 유기미생물로 충분히 숙성시켜 만든 청초액비를 배나무의 거름으로 줬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일반 배나무의 경우 4년만에 5m 가량 성장하고 열매는 2년만에 수확하는데 안씨의 배나무는 거짓말처럼 1년에 5m를 자랐고 그 해 바로 수확이 가능했다.

문제는 1년만에 다 자란 배나무의 영양생장(키크는 과정)을 멈추게 하는 일. 안씨는 훌쩍 커버린 배나무의 생식성장(열매맺는 과정)을 위해 사람 배꼽 높이의 가지 3분의 1가량을 잘라 Y자 모양으로 눕혀 해결했다.

이렇게 생산한 배의 당도는 16브릭스(brix·당도 측정 단위)로 일반 배(9~12brix)보다 훨씬 높았다. 당연히 서울의 청과물시장 등에서도 다른 유명 배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고 '과일의 고장' 영천의 명성을 높였다. "당도 1bix를 높이기 위해서는 농부가 봄부터 죽을 힘을 다해야 합니다.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는 외국 농산물에 맞서려면 우리 과일의 경쟁력을 높여야지요."

안씨는 고품질 배 생산에만 만족하지않았다. 자신이 만든 제품에 대해서는 철저한 리콜제를 실시했고 배 음료 제조가공기술부문 특허권도 2003년 따냈다. 중국 한의학계 자문을 받아 대구대학교와 공동개발한 배음료는 오미자와 도라지·생강·올리고당 등을 첨가, 감기와 기침·숙취해소 등에 효과가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국에서 밀려드는 '배농사 잘 짓는 법' 강의 요청으로 바쁜 와중에도 그는 '붉은 배'의 재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가 모처에서 개발 중인 '붉은 배'는 익으면 누런 색이 아니라 사과처럼 붉은 색을 띤다. 2~3년 뒤에는 일반 시판도 가능할 전망인 붉은 배는 당도는 물론 배의 주영양 성분인 나트륨·칼슘·마그네슘 등이 일반 배보다 많고 특히 항암치료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돈 나무'다.

안씨는 "사람들이 저보고 인생 대역전이라고 말하지만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소규모농이 수입개방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브랜드의 고급화뿐"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영천·이채수기자cs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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