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치고 달리기

입력 2005-06-29 11:17:16

갓 잡아 올린 해산물을 공판장에서 경매하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본 적이 있다. 수량과 품질, 그리고 출어한 배 등이 적혀 있는 생선 더미들이 경매 중에 있다. 경매사의 신속한 진행으로 최고가를 제시한 응찰자에게 낙찰되면서 경매는 마감된다.

순조롭게 경매입찰이 이루어진다면 매도자는 제일 비싼 가격에 팔게 되고 매입자는 제일 싼 가격에 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매인들의 담합이 있다면 애써 잡아 올린 해산물을 헐값에 팔게 될 것이다. 반대로 선주가 독점적으로 물량을 조절한다면 비싼 가격에 적은 물량만이 팔릴 것이다.

경제이론은 경쟁시장을 효율적인 시장모형으로 보고 있고 반대로 독점시장은 비효율적인 시장모형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현실에 더 근접한 시장모형도 분석한다. 그 중에서 보몰(W Baumol)과 윌릭(R Willig) 등의 경합시장(Compatible Market)모형은 우리 경제구조가 시장주도로 전환되는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경합시장모형은 시장에 하나의 공급자만 있더라도 잠재적 공급자가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잠재적 공급자의 진입을 의식한 현재의 공급자는 독점이윤을 얻으려는 가격 책정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쟁시장처럼 작동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 주도하에 경제개발계획 등을 통한 자원의 전략적 집중을 통해 고성장을 이룬 국내경제는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시장주도로 경제운영 방식을 전환하고 있다. 세계화의 진전은 시장 간 진입장벽을 낮추고, 상품'서비스'자본의 이동을 더한층 자유롭게 만들고 있다. 이제는 경쟁이 국가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외환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외국자본이 한국시장에 들어와 주식'채권'부동산 등에서 수십조 원의 돈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에만 배당으로 5조 원 이상을 가져간 것으로 추산됐다. 외국의 사모펀드 등이 우리의 부동산과 주식을 싼값에 산 뒤에 비싸게 팔아서 거대한 이익을 남긴 뒤에 빠져버리면 국가 경제에도 마이너스라고도 한다.

이러한 치고 빠지기를 통한 국부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외국자본으로부터 우리 기업을 지켜야 한다고도 한다. 외국 투기자본들이 외환위기라는 우리의 약점을 이용하여 낮은 위험으로 큰 이득을 취했다고 흥분하기도 한다.

외환위기를 겪은 중남미에도 헐값이라 생각하고 외국자본이 많이 들어갔었다. 그러나 중남미국가들은 한국처럼 빠르게 회복되지 못했고 신규 진입한 외국자본은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외국의 투기자본도 때로는 이득을, 때로는 손실을 보기도 한다. 그들도 시장경쟁원리에 따른 경쟁을 하며 그 과실을 얻는 것이다. 외국자본의 이익을 우리의 손실로만 간주하기보다는 준비가 미비한 상태에서 시장경험을 얻기 위해 비싸게 치른 비용으로 위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 기업들도 북미지역과 서유럽 등 선진국시장에서도 선전하고 있고,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지역과 동구권이나 중남미 등지 시장에서도 약진하고 있다. 지난 한 해 자동차 수출은 3백만 대를 넘어서고 조선 수주는 세계 최대이다. 특히 IT산업은 더 역동적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의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우리 정부도 전략적으로 FTA를 추진하고 있다. 안방 시장의 문턱을 낮춰주고 대신 우리가 진입할 세계시장의 문턱도 제거하려는 전략적인 시도이다.

새롭게 적응해야 할 환경변화로 시장규율이 있다. 시장규율은 경제주체에 자유로운 선택을 부여하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도 부과한다. 팔리지 않으면 시장에서 수요를 만날 때까지 가격을 낮추어야 한다. 자본은 수익률이 높은 쪽으로 이동한다. 인력도 돈벌이가 좋은 쪽으로 이동한다. 시장 수요에 부응할 때 생산과 고용 그리고 투자가 선순환되어 경제가 운영된다. 시장수요와 만나기 위한 경쟁은 생존을 위한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역내'외 시장의 문턱이 모두 낮아지고 있다. 시장의 담장이 낮아지는 것은 잠재적 참여자가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더한 경쟁을 부추긴다. 그래도 세계시장에서 선전하는 기업들이 우리 기업 중에서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삶 자체가 힘이 들지만 우리에게 기회가 닫혀 있는 것은 아니다.

박상태(한국신용평가정보주식회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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