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중국 선양(沈陽), 선양~옌지(延吉) 비행기가 회항하면서 백두산 서파 입구까지 버스로 10여시간 이동, 2시간 새우잠을 자고 2천200여개 계단을 올라 도착한 5호경계비.
하지만 어렵게 도착한 백두산은 끝내 입산을 허용하지 않았다. 매일신문과 대구등산학교가 공동으로 주관한 '매일신문 창간 59주년, 광복 60주년 기념 백두산트레킹' 1차 팀 60명은 25일 서파코스의 출발점인 5호경계비에 올랐다. 하지만 몸을 날려버릴 듯한 강풍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구름, 바람을 탄 굵은 빗줄기가 연신 뺨을 후려치는 악천후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비바람을 예상하고 준비해간 복장들과 장비마저도 소용없었다. 산행팀은 눈물을 머금고 코스를 바꿨다. 장백폭포가 있는 달문쪽을 통해 천지로 직접 오르기로 했다. 2시간여에 걸친 도전 끝에 산행팀은 다행히 잔설이 남아있는 장백폭포의 위용과 천지, 그 주위를 둘러싼 16개의 산봉우리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1차 산행팀은 서파 트레킹을 하지못한 아쉬움을 천지물에 손을 담그고 그 물을 마시며 털어냈다.
5호경계비에서 되돌아 내려온 후 장백폭포를 향해 가는 버스 안은 아쉬움이 가득하다. 트레킹은 고사하고 산 위에서 천지도 제대로 내려다보지 못했으니 오죽했으랴. 하지만 상황은 곧 달라졌다. 그렇게 내리던 비도 그치고 보란 듯 맑게 갠다. 백두산이 또 언제 심술을 부릴지 몰라 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점심도 산행 후로 미뤘다. 산행이라야 가파른 계단을 포함해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한 거리. 10시간 트레킹을 각오하고 온 사람들에겐 산행이라기보다 산보 수준에 불과하다.
높이 68m의 장백폭포를 지나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승사하를 지난다. 천지물이 넘쳐 승사하를 지나 장백폭포의 물줄기를 이룬다. 멀리 천지를 둘러싼 백두산 연봉들이 다시 오라는 듯 뚜렷하다. 새벽녘의 비바람과 짙은 구름은 다 어디갔을까 싶다. 트레킹을 시작했으면 지금쯤 오른쪽 봉우리 어디에서 천지를 내려다보며 감격해하고 있을 시간이다.
하지만 시퍼런 천지 물가에서 맞는 흥분과 감탄도 만만찮다. 천지를 둘러싼 2,500m급 이상 16개의 연봉이 파노라마처럼 선명하다. 한바퀴 휘 둘러본다. 아름답다라기보다 웅장하다. 왼쪽으로 지프를 타고 오르는 북파코스의 천문봉(2,670m)과 북한의 쌍무지개봉(2,626m), 비류봉(2,580m), 장군봉(2,749m)이 펼쳐진다. 오른쪽은 트레킹코스인 녹명봉(2,603m), 백운봉(2,691m), 청석봉(2,662m)이 또 하나의 파노라마를 이룬다.
이 봉우리들로부터 가파른 포물선이 주름치마처럼 흘러내려 천지를 이룬다. 이 치마폭엔 아직도 녹지않은 눈의 흔적이 선명하고 양지쪽엔 온갖 야생화들이 화려하다. 옅은 노란색을 띤 노란만병초를 따라 산허리를 올라본다. 바로 눈앞인 것 같더니 제법 오르기가 힘들다. 숨이 턱에 찰 무렵, 만병초가 이룬 화단 안에 섰다. 발아래 천지가 까마득하다. 만병초는 주름치마 저 위쪽에서부터 천지 물가에 이르기까지 죽 펼쳐져있다. 디지털카메라로는 이 모든 걸 다 담아내지 못한다. 하긴 한눈에 천지를 다 담아내지도 못하는데 카메라인들 별수 있으랴 싶다.
최고 수심 384m, 평균 수심 213m. 일부는 천지에 손을 담근다. 보는 것 만으로는 천지를 느낄 수 없어서일 게다. 한쪽에선 가져온 물병에다 천지물을 떠담는다. 이제야 얼음이 떠다니는 천지를 촉감으로 느끼고 맛으로 느낀다.
겨우 한숨 돌리고 다시 보는 천지는 맨얼굴이다. 새벽 5호경계비에 올랐을 땐 몇 겹의 구름으로 가리고 있던 얼굴이다. 한겹한겹 벗어던진 천지는 속살까지 다 드러냈다. 이 모습을 보기위해 새벽 3시부터 그렇게 안달을 냈다.
글·사진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사진=천지를 호위하고 있는 산봉우리엔 6월의 백두산 야생화인 만병초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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