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광장-도덕과 법률사이

입력 2005-06-29 08:45:12

1970년대 머리를 길게 기른 청년들을 거리에서 붙잡아 그 자리에서 머리카락을 가위로 싹둑 자르거나 무릎 위가 훤히 드러난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대생을 단속하는 경찰관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 때 긴 머리와 미니스커트를 단속한 이유는 젊은이들이 전통의 미풍양속을 문란케 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지금 벌어진다면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나름대로의 멋과 미를 추구하며 노랑, 빨강색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하는 지금의 젊은이에게 길에서 머리색을 이유로 거리에서 머리카락을 잘라버린다면 이것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그러한 것을 풍기문란을 이유로 단속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불과 30여 년 전 분명히 우리사회에 있었던 일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회교율법과 가치관으로 국가를 통치하려다 붕괴되었다.

그들은 서구적 생활방식을 거부하고 회교적 규범에 따른 국가건설을 강행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강제로 여성에게 차도르를 걸치게 하고 여성의 활동을 억제하였다.

이러한 종교적 규범이나 율법에 의해 국가를 통치하던 사례는 기독교 중세사회에도 있었다고 여겨진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성매매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는 그 필요성이나 당위성에 대해서는 논란거리가 될 수 없다.

누구도 그러한 면에 대해서는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인 도덕에 의하여 규율되어야 할 것을 약자를 위한다거나 사회정의의 측면에서 법률로 강행할 때 그 범위를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와 어떤 방식으로 실효성 있게 할 것인가이다.

예를 들어 유교적 규범을 법으로 정하고 강행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보다 구체적으로 칠거지악을 법률로 만들어 시행한다고 생각해보자.

또 버릇없는 행동을 하는 젊은이들을 거리에서 곤장으로 때리는 태형을 법으로 도입한다고 가정해보자. 안될 것도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우리사회에서 이것은 여러 모로 동의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도덕으로 규율하여야 할 것을 사회적 필요성과 당위성을 가지고 법률로 규율하면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서는 잘못하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정권이 범한 우를 범하게 되며 우리나라도 경우에 따라서 봉건적 유교규범이나 다른 규범을 법률로 정하여 국민에게 강요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필자는 과거 미국의 '매카시선풍'도, 중국의 홍위병 열풍도,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적 분위기도, 탈레반적 회교 율법지상주의, 또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에서와 같은 극단적 분위기 모두를 좋아하지 않는다.

모두 정상적인 사회분위기로 보기 어려운 사례이다.

도덕으로 규율할 영역을 법률로 규율하는 과정에서 좀 더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앞에서 언급한 극단적 열병이 출현할 여지를 우리 사회에서 없애기 위함이다.

따라서 어디까지 법률로 규율하고 어디까지 도덕으로 규율할 것인지는 시간을 두고 계속 논의를 하면서 사회적 동의를 얻고 그 합의기반을 넓히기 위해 장기간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도덕과 법률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같으면서도 서로 크게 다르다.

전자는 양심에 의해 규율되고 후자는 법률적 강제력에 의하여 규율된다.

앞으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토대를 굳건히 하려면 법률이 도덕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아니 된다.

굳이 침해하거나 그 경계를 재조정하고 싶으면 폭넓은 사회적 동의를 얻도록 장기간 적어도 10년 이상 노력해야 한다.

성매매금지법은 열악한 상황에 처한 우리 사회의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법정신, 즉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법정신에 있어서 의미 있고 중요한 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법은 마치 1970년대 장발을 한 청년의 머리카락을 길거리에서 가위로 자르는 행위가 어색한 것처럼 앞으로 21세기 초의 한국적 사회상황을 반영하는 현상으로 평가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앞으로 도덕의 영역과 법률의 영역에 대한 사회적 성찰과 열린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그 어떤 교조적 이념으로부터도 우리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이 들고 시급하더라도 도덕으로 규율할 것을 법률로 정하는 것은 좀 더 생각을 하고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덕과 법률 사이에 우리가 무슨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김권구 계명대 교수·한국문화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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