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힘의 근원

입력 2005-06-28 09:29:58

일요일에 마을 뒷산에 올라가다가 택시 운전을 하는 분을 만났다.

근처에 사는 50대 초반의 남자분인데 워낙 말씀이 재미있고 인상도 좋아서 이 분의 개인택시를 두 번인가 타고는 금세 친해져 버렸다.

이 분이 근래 자신이 겪은 사고 이야기를 했다.

비오는 날, 네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려고 방향지시등을 켜고 좌회전 차로에 서 있는데 트럭이 비에 미끄러지면서 뒤편 오른쪽 범퍼를 들이받았다는 것이다.

택시에는 마침 같은 동네에 사는 잘 아는 손님이 타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 봐서 손님도 괜찮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손님을 병원으로 데려다 주고 자신은 경찰서로 갔다.

그런데 그 사이에 상황이 바뀌어 자신이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가만히 서 있던 차의 운전자가 어떻게 가해자가 되는가.

"내 차 궁둥이가 직진차선에 살짝 물려 있었다는 거예요. 트럭은 직진을 하려고 했는데 내가 길을 막았다는 거지. 내 과실이 더 크대. 트럭 운전사가 젊은 사람인데 언제 사진을 찍었는지 디지털 카메라를 딱 내밀더라구, 나 참."

워낙 살짝 받아서 택시는 범퍼가 약간 벗겨졌을 뿐이라 고칠 것도 없었다.

트럭 역시 마찬가지처럼 보였지만 트럭 운전사가 그 전부터 있었던 흠까지 모두 고치려고 들었고 부분 도장까지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보험으로 고쳐주기로 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사람한테서 발생했다.

병원에 간 손님이 자신과 친한 택시 기사가 가해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각종의 비싼 사진을 다 찍고 전치 2주 진단서를 끊은 뒤 입원을 해버렸던 것이다.

나중에 사정을 알고 미안해 하긴 했지만 어차피 치료비는 보험사에서 물어주는 거니까 2주일을 꽉 채워 입원했다가 퇴원했다고 한다.

그는 병원에 위문 가랴, 정비소에 부탁하러 가랴 하는 바람에 일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경찰로부터 벌과금에 벌점까지 받았으며 보험료도 대폭 올라가는 다중적인 피해를 입었다.

어지간하면 그냥 좀 봐주고 가도 될 일을 가지고. 택시 운전을 20년 가까이 해온 그도 그런 일은 처음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이 분야에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불법 유턴하는 차를 쫓아가서 들이받고는 병원에 가서 드러눕는다

골목에서 나오는 차를 기다렸다가 옆구리를 들이받고 병원에 가서 드러눕는다.

일방통행로에 잘못 들어오는 차를 들이받고 역시 단체로 병원으로 간다.

차도 고치고 병원 침대에 누워서 만화책을 빌려다보고 보험사에서 두둑한 합의금도 받아낸다.

아예 '사업'을 하다가 꼬리를 밟히기도 하지만 그의 택시를 받은 트럭처럼 우연히, 고의성 없이 그렇게 된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이따금 사고가 날 뻔한 정황에 부닥친다.

억지로 끼어드는 차가 있고 남이 끼워주지 않으면 진입할 수 없는 길도 있다.

이럴 경우 양보를 하지 않아서 사고가 나면 양보를 받으려던 차가 책임지게 되어 있다.

고속도로에서는 얌전하게 양보를 해주는 것은 대형사고를 막아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걸 잊고 산다는 것이다.

내가 잘 나서, 내 인생 운전을 멋있게 해서 내 차로를 차지한 것으로 착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때가 많다.

남이 봐주는 줄도 모르고 자신만의 능력으로 날고 긴다고 생각한다.

알고 보면 우리는 서로 참 많이 봐주면서 살고 있다.

운전할 때만 그런 게 아니다.

공중화장실에서 급한 표정을 짓는 사람에게 양보해주는 일이 있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가 문을 세게 닫는 것을 너그럽게 봐주는 일도 있다.

더 크게는 이웃 간에, 마을 간에, 나라 사이에 서로 봐주는 일이 있다.

어린 시절, 레슬링 같은 놀이를 할 때는 "봐주기 없기"라고 선언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놀이가 아닌 일상에서 어른스러운 사람, 강한 나라는 "봐주기"를 잘한다.

언젠가는 입장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어른은 안다.

강자의 위엄과 힘은 봐주는 데서, 관용과 양보에서 나온다.

물론 이런 이치를 모르는 덩치만 큰 아이들, 심지어 한 나라의 지도자도 없지 않은 듯하지만.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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