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사의 회장 빌 게이츠는 10년 전에 쓴 '미래로 가는 길'이란 책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이 만들어낸 정보 고속도로가 교육 분야에서 '대량 개성화(mass customize)'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학생들은 개성과 수준에 따라 컴퓨터가 제공하는 교육 자료에 맞춰 자기 나름의 경로를 결정해 자신만의 속도로 공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리바이스가 청바지를 대량생산하면서도 소비자 개개인의 취향에 맞는 주문생산품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예측은 1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에 놀랍도록 맞아 떨어진다. 도시든 시골이든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전국의 수많은 교사와 각 분야 전문가들이 만든 높은 수준의 자료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약간의 비용으로 서울의 유명 학원 강사나 대학 교수의 강의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시'도 교육청이 구축중인 사이버 가정학습 체계가 조만간 정착되면 사이버 공간에서 수업을 듣고, 질문하고, 담당 교사와 상담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정보 강국을 꿈꾸는 나라답게 우리 교육 분야의 정보화 속도는 세계의 최선두에 있다. 우려하던 문제들도 상당 부분 해결됐다. 가령 교육은 교사와 학생이 얼굴을 맞대는 면대 면 방식이어야 한다든가, 컴퓨터가 교사들의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든가, 학생들의 내용 이해도가 현격히 낮을 것이라든가 하는 초기의 비판들은 누구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의 관심이 가장 높은 대학입시에서만은 정보화의 부작용을 자초하는 어이없는 실책이 계속되고 있다. 바로 EBS 수능강의다.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교육부 발표 후 2개월 만인 지난해 4월 시작된 수능강의는 공공의 적이 된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명분만으로도 기대를 모았다. 더구나 인터넷 동영상 강의와 위성방송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화 기술이 동원되고 수능 출제라는 극약 처방까지 더했으니 성공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수능시험을 치른 수험생 가운데 수능강의가 도움됐다는 경우는 찾기가 힘들었다. 입시기관들의 조사 결과 체감 반영도는 20~30%대에 그쳤다. EBS측이 아무리 80% 이상 출제됐다고 주장해도 공허하게 들릴 뿐이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올해 수험생들은 더 이상 수능강의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교육당국이 계속 수능 출제를 공언하니 교재나 사서 봐야 하는 부담 정도로 여길 뿐이다. 방송 강의는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틀어주니 한쪽 귀로라도 듣지만 혼자 찾아서 봐야 하는 인터넷 강의는 이용도가 더 떨어진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자발성과 다양성이 무시된 결과다.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은 크기와 디자인의 청바지를 입으라고 강요한 꼴이다. 이쯤 되면 컴퓨터와 인터넷은 학생들에게 골치 아픈 도구가 된다. 이번에 잘못 새겨진 각인 때문에 향후 사이버 대학을 비롯해 평생교육의 근간이 될 교육의 정보 고속도로에 다시 오르는 일이 한참 늦어질지도 모른다. 공연히 청바지라면 치를 떨지도 모른다.
김재경기자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