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안가도 영어 술술~ "비결은 독서죠"

입력 2005-06-27 10:40:24

선원초교 3학년 류영지양

외국은커녕 영어학원조차 다녀본 적이 없는 류영지(선원초교 3년)양은 이제 겨우 아홉 살이지만 외국인 교수와 자유롭게 대화할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갖췄다. 원어민에 가까운 유창한 발음에다, 자신이 관심 있는 생물'인체 분야에 대해서는 대학생들도 잘 알지 못하는 전문용어까지 동원해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영지가 이처럼 영어에 능숙해지게 된 것은 모두 엄마'아빠 덕분이다. 영어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지금은 영지보다 영어회화에 더 어려움을 느끼는 평범한 부모인 류문정(40)'윤찬희(36)부부. 이들은 단순한 조기영어교육이 아니라 독서 교육을 통해 영지를 이중언어 구사자(Bilingual)로 키워냈다.

▲조기 영어교육

윤씨는 조기 영어교육 예찬론자다. 영지가 남들보다 탁월한 영어실력을 뽐낼 수 있게 된 데는 돌 때부터 시작한 조기 영어교육이 바로 그 비결. 돌이 될 무렵, 심심풀이 삼아 틀어놓은 영어 비디오를 따라 영지가 '빼풀(apple)'이라고 어설픈 발음을 흉내 낸 것이 이들 부부를 조기영어교육의 매력으로 빠져들게 했다.

다른 아이들이 '뽀뽀뽀'를 보며 즐거워할 시간에 맞춰 매일 영어비디오를 틀었다. 영지는 그 시간에는 TV에서 영어방송이 나오는 줄 알았다. 장면에 맞춰 아빠가 함께 동작을 하며 놀아주는 것도 효과가 좋았다. 영지가 잠들 무렵이면 아빠와 엄마가 돌아가면서 영어'한글 동화책을 번갈아 가며 읽어줬다. 그렇다고 우리말 교육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다. 언어에는 일단 인식이 바탕이 돼야 하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것을 보게 하고 듣게 해 어휘에 대한 이해력을 높였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영어 환경에 노출시켜 자극을 계속하자 어느새 영지의 머릿속에는 우리말과 영어가 똑같은 비중으로 자리 잡았다. 영어 문장을 들으면 일단 우리말로 번역부터 시작하고, 한 문장을 말하려면 순서대로 영작을 하는 일반인들과 달리 영지는 '그냥' 말하고 이해하는 수준이 된 것이다.

▲부모의 욕심을 강요하지 마세요

너무 이른 외국어 교육은 아이들에게 심각한 스트레스가 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오히려 조기 영어교육이 해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내놓고 있다. 그래서 영지 부모는 첫 돌 때부터 영어를 시작하면서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큰 원칙으로 세웠다. 결과를 보려하기 보다는 영지와 즐겁게 논다는 생각에서 아이가 받아들였는지를 확인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게 뭐야? 대답해 봐"라고 자꾸만 아이를 다그치다 보면 자녀에게는 은연중에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아이가 스스로 호기심을 드러내고 물을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 영지가 잠든 사이에 알록달록, 올록볼록한 종이들을 사용해 단어나 문장 등을 써서 베란다 창문에 붙여놓지만 절대 먼저 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엄마, 저게 뭐야?"라고 물어올 때까지 모른 체하는 것이다. 책을 사 줘도 "비싼 돈 주고 산 책인데 왜 안 읽어?"라고 다그치지 않았다. 윤씨는 "엄마가 읽히고 싶어 산 책이니 굳이 아이에게 읽으라고 강요할 필요 없이 책을 사 줄 수 있다는 사실로만 만족하기로 마음먹고 나니 오히려 편해졌다"고 했다.

다만 깨끗한 집을 꾸미기를 포기하고 영지 눈에 잘 띄는 이곳저곳에 책을 마구 널어놓았다. 언제든지 손만 뻗으면 책을 잡을 수 있도록 해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을 뿐이다.

▲독서는 친절한 선생님

영지에게는 책이 가장 좋은 영어 선생님이자 전 교과목을 가르쳐주는 친절한 선생님이다. 영지네 집은 작은 도서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거실은 물론 넓은 방 한 칸 빼곡히 책으로 들어차 있다. 류씨는 "영어책 800여 권을 포함해 4천 권가량 될 것"이라며 "한 달에 쓰는 책값만 평균 50여만 원에 달할 정도"라고 했다.

영지 부모님은 영어를 가르치겠다는 욕심보다 여러 분야에 박식한 아이를 꿈꿨다. 그래서 꼭 영어 책을 고집하지 않는다. 영지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에 대한 우리말 책을 먼저 두루 읽힌 뒤 영어 책을 사주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시키지 않아도 아이는 영어 책에 흠뻑 빠져든다.

특히 영지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에 대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지난해 영지가 삼국지에 몰두했을 때는 50여 권에 가까운 삼국지를 구입했다. 만화 삼국지와 슈퍼 삼국지, 삼국지 구비동화 등을 모두 독파하고 삼국지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영어로 된 애니메이션 삼국지를 보여줘 시키지 않아도 영지가 집중하게끔 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최근에 영지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고래를 비롯한 포유류. 시중에 나와 있는 각종 고래와 관련한 책을 죄다 사서 읽고도 모자라 요즘은 원서로 된 고래 백과를 읽고 있다. 몇 달 전에는 포항에 머무르고 있는 국제 그린피스 회원들을 방문에 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원서의 틀린 부분을 영지가 정확하게 지적해 내 외국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영지 부모는 아직까지 사교육에 의지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류씨는 "사교육비에 투자하는 돈만큼만 책에 투자한다면 훨씬 적은 돈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계속 영지가 독서를 통해 영어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뒷받침할 계획"이라고 했다.

글·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사진·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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