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부부의 특별한 주말

입력 2005-06-25 14:23:14

"주 5일 이렇게 즐겨봐요"

7월부터 확대 시행되는 주5일제. '기대 반, 걱정 반'인 직장인이 한둘이 아니다.

주5일제가 되면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주머니 사정은 빤하니…. 매일신문 주말팀은 수소문 끝에 주5일제를 시행한 지 3년 가까이 된 제일은행 포항 두호동지점의 박현석(42) 차장을 찾아갔다.

답답한 것이 있으면 경험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상책. 가족이 있는 대구와 포항을 오가며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는 박 차장 가족의 금∼월요일 생활을 밀착 취재했다.

金요일 오후 사무실에서 분주하게 일하는 박 차장. 전화를 받는 모습이 자못 근엄해(?)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표정 관리하는 것. 즐거운 기분을 너무 표내기 멋쩍어서다.

금요일 박 차장의 퇴근은 좀 이르다.

평일에는 7, 8시가 넘어야 일이 끝나지만, 금요일엔 5시 30분이면 은행 문을 나선다.

다른 직원의 조금 쉬운 일을 대신 맡아 일찍 퇴근토록 한 지점장의 배려로 6시쯤에는 대구행 시외버스를 탈 수 있다.

"지점장님, 복 받으실 거예요!"

그 시간, 대구 달서구 용산동 집. 아내 허미숙(40)씨는 저녁식사 준비로 바쁘다.

평일에야 아이들 반찬 한두 가지면 되지만, 1주일 만에 감격적인 해후를 하는 남편을 위해 한가지 반찬이라도 더 마련하려는 아내의 마음은 즐겁기만 하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저녁식사. 그런데 금요일 저녁마다 아빠를 맞는 아들 해훈(14·성곡중 2년)이의 표정은 매주 다르다.

소원이었던 휴대전화를 갖는 대신 매일 1시간씩 영어공부하기로 한 아빠와의 약속. 저녁밥을 먹고 나면 1주일 동안 약속을 잘 지켰는지 아빠의 검사가 시작되는데…. 다행히 해훈이는 약속을 어기면 휴대전화를 압수한다는 삼진아웃제에 걸리지 않고 잘하고 있단다.

土요일은 신나게 노는 날. 누가 늦잠을 잔단 말인가. 새벽 5시. 박 차장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아침식사를 끝낸 8시. 온 가족이 집을 나선다.

그런데 해훈, 수진(11·선원초 5년) 남매와 박 차장 부부가 가는 길이 다르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과 달리 박 차장 부부는 등산복 차림.

"학교 잘 다녀와." 공부하러 가는 아이들 맘이 좀 상할 듯하다.

아빠, 엄마는 놀러 가는데….

"집에서 가까운 와룡산이나 앞산, 팔공산에 가요.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와도 3시간 정도면 충분한 코스를 오르지요."

쉬지 않고 산을 오르며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지는 부부. 하지만 오후 1시까지는 집으로 간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온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 아이들이 학교를 쉬는 날이면 온 가족이 함께 산으로 간다.

밥, 반찬, 과일 등 집에 있는 음식을 그대로 싸가도 산에서 먹는 점심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처음 주5일제를 시작했을 때는 유명 관광지로 돌아다녔어요. 한 번 나가면 10만∼20만 원 이상 드는데 봉급생활자가 매주 그럴 수도 없고 결국 값싸고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산 나들이로 바꿨죠."

한때 수영과 마라톤에도 푹 빠졌다는 이들 부부는 토요일 오후에는 아이들과 함께 영화도 보고 문화답사도 떠난다.

웬만한 나들이는 토요일에 가는 게 원칙.

日요일은 집에서 푹 쉬는 날. 자칫 나들이로 쌓인 피로로 월요일 사무실에서 맥을 못쓰는 월요병에 걸리기 딱 십상이다.

그래서 박 차장 가족은 되도록 일요일에는 '방콕족'이 된다.

하지만 첫째, 셋째 일요일은 예외다.

새벽 4시 30분에 집을 나서는 박 차장과 해훈이. 일요일에만 하는 백두대간 종주 팀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1년 반이나 걸리지만 부자는 백두대간 종주를 계획했다.

"백두대간 종주는 수학 공식 하나 더 외우는 것보다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지난번 지리산에 갔을 때 해훈이가 디지털 카메라로 새소리를 동영상으로 녹음하며 자연의 소리를 느껴보려는 모습을 보고 함께 시작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박 차장은 지난해 아들과 함께 지리산 종주를 하고 15시간 동안 눈 쌓인 설악산을 걸으며 많은 얘기를 나눴다며 자연스럽게 사춘기인 아들과 마음을 나누는 기회가 됐다고 했다.

月요일 오전 6시 30분, 포항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손에는 아내가 챙겨준 밑반찬이 들려 있다.

"주5일제를 하기 전에도 주말부부로 구미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그때는 토요일 오후 늦게 퇴근해 일요일 하루종일 잠만 자는 피곤한 남편, 아빠의 모습이었지요. 토요일 하루를 쉬는 거지만 그 차이는 엄청납니다.

아내와 눈 쌓인 팔공산에서 2박 3일 부부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다 주5일제를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월요병 없이 한 주를 힘차게 시작하는 박 차장의 모습은 의욕으로 가득 차 보였다.

글·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imaeil.com

못다 한 이야기-주5일제를 맞아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진 부부들이 같이 즐길 만한 거리를 찾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모양입니다.

박현석 차장 부부는 수영, 마라톤, 꽃꽂이, 등산 등을 해왔지만, 묘하게도 남편이 먼저 시작하고 아내에게 권하는 식이 된 데다 서로 체력이 차이 나니 적당한 시간 조절도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라고 하더군요. 섭외 과정에서 만난 다른 부부들도 토요일 오전 아이들 등교 뒤 함께 테니스를 치거나 심야 영화 관람, 집 부근 공원 산책 등 부부만의 시간을 가지는 모습이었습니다.

큰 돈 들이지 않더라도 부부가 함께 놀거리를 만들어 생활화해 보라는 경험자들의 권유를 참고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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