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이나 하라고? 어이구 장난 아니네!
맞벌이 부부에게 다가온 주 5일제. 가사 분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부부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의 한 판이 가정마다 기다리고 있을 터다.
주말에 여행을 떠나도 청소는 해야 하고, 부부가 함께 취미생활을 해도 설거지는 해야 한다.
누가 할까? 아내가? '당연히 아내'라고 답한 남편들은 조용히 이 면을 넘겨도 무방하다.
아울러 다음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남편은 역시 이 면에 시간을 할애할 이유가 없다.
혼자서 살아도 충분한 '우량주부'니까.
질문 하나. 세탁기 각종 버튼의 기능을 숙지하며, '여보!'라고 세 번 이상 부르지 않고 빨래를 마칠 수 있다.
질문 둘. 아내가 외출하고 없을 때 최소한 샌드위치 이상의 간식을 자녀들에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질문 셋. 아내가 말하기 전에 음식물 쓰레기통이 꽉 찼는지 확인한 뒤 조용히 갖다버린 적이 있다.
질문 넷. 베란다에 널린 빨래를 종류별로 갤 수 있으며, 어느 서랍장에 넣어야 하는지 꿰뚫고 있다.
질문 다섯. 냉장고에도 냄새가 배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때문에 직접 청소를 해본 적이 있다.
토요일 아침. 혼자서 밥을 차려먹고 출근하던 아내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발 청소라도 좀 해 놔요. 애들 아침 꼭 챙겨 먹이고." 잔소리가 길어질새라 등을 떠밀다시피 현관 밖으로 내몰았다.
오전 8시. 아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려면 최소한 5시간 남았다
늘어지게 한숨 더 자고 일어나도 충분한 시간. 침대로 다시 기어들어가 잠깐 눈을 붙였다고 생각할 즈음, 아이들이 깨웠다.
배가 고프단다.
정말 눈만 붙였다가 떴는데 어느새 9시 30분.
냉장고를 뒤졌다.
밥은 어젯밤에 해놓았으니 반찬만 챙기면 아침 식사는 걱정없다.
아니다.
일곱 살난 딸과 세 살난 아들은 아직 반찬을 따로 만들어줘야 한다.
냉장고에 남아 있던 햄 조각을 썰어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뒤 볶았다.
식사 시작.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세 살난 아들은 아직 입에 넣는 밥보다 아래로 흘리는 밥이 더 많다.
결국 일일이 떠먹여야 했다.
평소 아내는 자기 밥 먹을 거 다 챙겨먹으면서도 아들 밥도 다 먹였는데, 신기할 따름이다.
겨우 세 식구 밥 먹었는데 설거지는 산더미다
밥 그릇, 국 그릇은 말할 것도 없고 프라이팬에 도마, 반찬 그릇까지. 일단 심심하다고 보채는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켜주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손에 세제를 잔뜩 묻힌 채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뛰어들어와야 했다.
서로 좋아하는 것 보겠다며 싸운다.
그렇게 뛰어들어오기를 서너 번. 설거지 마치는 데 20분 걸렸다.
청소 시간. 일단 아이들이 어지러트려 놓은 책이며 인형, 블록 등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판단 착오였다.
아이들을 꽁꽁 묶어놓지 않은 다음에야 어떻게 장난감이 제자리에 가만히 있겠는가. "어지러트리면 혼난다"며 엄포를 놓고 진공청소기를 끌고 왔다.
나름대로 깨끗이 해보겠다며 침대 밑까지 샅샅이 훑었다.
이마에서 땀이 배어 나온다.
아침부터 날씨가 더운가.
다음은 얼마 전 구입한 스팀청소기로 바닥닦기. 제법 무겁다.
진공청소기와는 달리 스팀청소기는 힘깨나 쓰인다.
30분을 씨름했더니 마루며 방 바닥이 반질반질해졌다.
이젠 아예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진다.
아내는 매일 이렇게 한다.
팔뚝도 별로 굵지 않은데 용하다.
아차! 벌써 11시 30분이 넘었다.
화장실 청소는 시작도 못했다.
더 큰 문제는 빨래. 청소 시작 전에 세탁기부터 돌려야 하는 건데 깜빡했다.
빨래통에 있는 세탁물을 한꺼번에 세탁기에 붓고 세제를 듬뿍 넣었다.
세탁기 버튼이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가전제품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니 남편들이 괴로워지는 것이다.
물높이, 물세기, 탈수 횟수까지 조절하라고 한다.
다음은 빨래개기. 건조대에 널린 빨래를 다 걷으니 한아름이나 된다.
곁눈질로 빨래개는 모습을 수없이 봐 왔던 터라 일단 종류별로 나눈 뒤 빨래를 갰다.
양말, 속옷, 바지, 웃옷 등등. 대충 옷장에 들어갈 만한 크기로 갰다.
아들 녀석이 정성들여 개놓은 옷 위로 뛰어다닌다.
울건 말건 제 누나가 있는 방에 감금(?)시켜 놓고 다시 정리했다.
그런데 정작 옷들을 어디에 넣어야 할지 모르겠다.
장롱뿐 아니라 화장대 서랍, 아이 옷장 곳곳에 분산돼 있다.
머리까지 아파온다.
세탁기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자꾸 '딩동 딩동'하는 소리가 나는데, 설마 고장은 아니겠지. 걱정이 돼서 세탁기 뚜껑을 열어보고 있는데 아내가 돌아왔다.
왜 이렇게 빨리 온거야.
검열이 시작됐다.
냉동실에 돈가스 만들어 놓은 게 있는데 왜 햄을 먹였냐는 핀잔으로 집중 포화가 시작됐다.
그때까지 컴퓨터를 하고 있던 딸도 혼났다.
어떻게 애들과 놀아주면서 청소, 빨래, 설거지를 다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세탁기를 열어 보더니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섬유유연제는 넣었느냐, 옥시XX는 넣었느냐는 핀잔은 약과. 속옷과 색깔있는 겉옷을 한꺼번에 빨면 어쩌느냐는 말에는 정말 꿀먹은 벙어리가 돼 버렸다.
완전히 '불량 주부'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흔히 '여자가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라고 말한다.
'살림이나'에서 '이나'라는 표현은 다분히 가사 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 및 남편의 과대망상증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으로 이런 표현은 사라져야 한다.
주부들의 팔뚝이 굵어지는 원인도 알게 됐다.
남편이 헬스하면서 근육 키우는 동안 아내들은 청소기와 씨름하면서 근력을 기른다.
아내가 빨래 때문에 힘들어 할 때 "빨래를 당신이 하냐, 세탁기가 하지"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정말 '맞을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남편의 가사 분담은 '체험'이 아닌 '동참'일 때 제자리를 찾는 것임을 깨닫게 됐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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