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병, 전입 때부터 부대적응 못해"

입력 2005-06-24 09:37:46

군 최종수사결과 발표…1주일 전부터 범행계획

연천 최전방 GP에서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장병 8명의 목숨을 앗아간 김동민(22) 일병은 부대 전입 때부터 부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참에게 반항적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 일병은 이 과정에서 고참에게 질책을 당했으며 이에 앙심을 품고 범행 1주일 전부터 "GP 소대원들을 모두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등 사전에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확인됐다.

윤종성 육군 중앙수사단장(대령)을 본부장으로 한 '전방 GP 총기사고 수사본부' 는 지난 22일 실시된 GP 현장 재검증과 생존 동료 병사, 김 일병 진술 등을 토대로 재수사를 벌여 23일 오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수사발표 결과, 김 일병은 동료 부대원 전원을 몰살하고 GP 전체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질러 10km를 남하해 남방한계선을 빠져나와 은둔 생활을 하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동료 부대원들은 수사발표 후 이번 참극이 선임병들의 언어폭력과 인격적인 모독 발언이었다기보다는 김 일병이 부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같은 GP에 근무한 김 일병의 초·중학교 동창생 천모 일병은 "김 일병은 선임들이 혼을 내면 욕을 했고 반항적인 모습을 보였다.

선임을 무시하는 행동을 많이 보였다"며 "그래서 더욱 혼이 났고 동기다 보니 혼나는 모습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김 일병의 바로 위 고참인 지모 일병은 "김 일병이 처음 소대 배정 당시 막내로 들어와 적응을 못했다.

성격이 소심했고 고참이 먼저 다가오기를 바랐다"며 "그래도 많이 다독거리고 질책도 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가르쳐 줬다"고 진술했다.

그는 "김 일병은 고참이나 동기들, 소대에 적응하는 모습은 안 보이고 모두가 자기에게 적응하길 바랐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대 분위기는 문제되지 않았고 김 일병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말해 소대 전입 당시부터 성격적인 결함이 있었음을 증언했다.

이에 앞서 홍종설 육군 헌병감(준장)은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김 일병은 범행 1 주일 전인 지난 13일부터 "GP 소대원들을 모두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해오다가 범행 전날인 18일 오후 3시 신모 상병으로부터 농구시합 응원을 잘하지 않는다는 질책을 받은데 이어 오후 5시께 취사장 청소를 않는다고 다시 질책을 받은 뒤 "수류탄 까고 총으로 쏴죽이고 싶다"라는 말을 하는 등 범행을 결심했다.

조사에 따르면 김 일병은 19일 새벽 2시 30분께 수류탄 1발을 던지고 K-1 소총 44발을 난사했다고 진술했으며 생존 병사 25명 중 22명이 같은 진술을 했다.

김 일병이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하는 과정에서 상병 사망자가 많았던 것은 소대원 26명 중 일병은 8명, 이병 2명, 병장 2명 등이고 상병은 14명(53%)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수류탄 폭발 후 아비규환이던 상황에서 상병들이 '불켜 불켜'를 외치며 대응을 위해 내무실 입구 쪽으로 몰려 나오다가 연발 사격으로 피격을 당해 사망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또 박의원 상병에게 수류탄 피해가 가장 큰 것은 출입문 쪽을 향해 누워자던 박상병의 복부 위에 떨어졌기 때문으로 조사됐으며 박 상병이 '움직였다'는 진술이 없었던 점으로 미뤄 수류탄을 몸으로 덮쳤다는 일부 유족 진술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수사팀은 이 부분에 대해 수사를 계속하기로 했다.

김 일병은 '선임병으로부터 질책을 당했고, 자신이 남보다 못하다는 내용' 등을 '수양록'에 기록했으며, 지난 6월 1일에는 일병을 달았다.

이제 신임 관리하라는 협박이 들어오고 일병 달았다고 빠질까봐 괜히 생트집이다'라고 적었다.

같은 달 7일에는 '괜히 은근슬쩍 신임에게 욕도하고 못한다고 지랄했다.

개념 없는 석민이…킥킥. 나도 한때 그랬지'라고 기록했으며, 어느 날에는'부GP장님 얼짱.

동민(사고자 이름) 바보'라고 기록돼 있었다.

고참의 언어폭력과 인격모독성 발언으로 부대원을 전원 몰살하려했던 김 일병이 수양록에 자신의 후임에게 욕을 하고 생트집을 잡았다고 기록한 것은 그의 이중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육군은 설명했다.

그러나 김 일병이 수양록 등에 이 같은 기록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부대 측이 관심사병으로 분류하지 않은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지난 6월 15일 저녁 김 일병을 포함해 GP장 김종명 중위의 송별회식 때 과자와 음료수(콜라, 사이다)를 마셨으며 병사 32명이 1인당 4천∼5천 원씩 회식비(30만 원)를 거뒀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당일에는 18일 오후 11시부터 19일 오전 1시 사이 근무자와 취침자를 제외한 19명이 GP 체력단련실에서 세계청소년 축구경기를 시청했다.

12명은 전·후반 모두 시청했으며 전반전은 1명, 후반전은 6명만 봤다.

회식 당시와 사고가 발생한 날에는 소주 등 주류는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 일병은 인터넷 게임 중 전투게임을 즐겼던 것으로 조사됐으며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분하지 못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수사본부 측은 설명했다.

(연합)사진: 전방부대 총기 난사 사건의 생존병사들이 23일 오후 성남 국군 수도병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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