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우리 사회의 조연들

입력 2005-06-23 08:37:09

언제부턴가 조연들을 좋아하며 또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딸이 보는 TV 미니시리즈라는 것을 함께 보면서 말이다.

미니시리즈를 보는 시간은 탤런트들에 대한 최근의 소식도 듣고…, 그 미니시리즈의 평도 하면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실없이 웃곤 하는, 말하자면 우리집의 대화시간이다.

그런데 조연들은 정말 연기를 잘한다.

주연들은 대체로 20대 안팎의 젊은 신인들인데 비해서, 한때는 소위 잘 '나가던' 배우들이었던, 늙수그레한 조연들이 '아버지'가 되어 연기하는 '아버지' 역의 아버지는 그 배우들의 연륜들 때문인지 정말 아버지 같고, 그 어머니 역의 어머니는 정말 어머니 같다.

그래서 생각지 않은 눈물도 흘리게 된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내가 주목을 하는 장면엔 딸도 역시 주목하고 있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순간, 아, 좋은 예술이란 이런 것이구나, 할 때도 있다.

그 중 내가 최근에 좋아하게 된 탤런트로 나와 나의 딸이 그냥 '바이올린 아저씨'라 부르는 배우가 있다.

그의 이름도 나는 잘 모른다.

그런데 딸의 설명에 의하면, 그는 바이올린이 취미라고 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는 것이다.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저렇게 무능하게 보이는, 약간 머리가 모자라는 듯한 아버지로 나오는 저 남자가 바이올린을 켜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두 개의 그림이 잘 합치되질 않는다.

오늘 본 그 TV 미니시리즈 속에서도 그는 정말 무능한 남편이었으며, 무능한 아버지였다.

그러므로 가장다운 가장노릇을 못 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그의 아내는 돈을 잘 버는 '똑똑한 여편네'였다.

그러니까, 가장 노릇을 하는 여편네의 구박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그의 모습은 우습기도 하고, 어떨 때는 눈물겹기까지도 했다.

어쩌다 어쩌다 '퀵 서비스'로 취직을 했으나, 자동차 운전도 못하고 오토바이 운전도 못하는 탓에 버스를 타고 물건 배달하러 간다.

그러나 버스 속에서 어떤 매력적인 여인을 쳐다보다 그만 그 비싼 노트북 컴퓨터를 버스에 둔 채로 벌떡 일어서서 그 여자를 따라 내려버린다.

정말 바보 같다, 어쩌면 무릎 위에 놓은 지갑을 잊고 벌떡 일어서길 잘하는 나 같기도 하고.

또 한 사람의 배우로 탤런트 양희경이 있다

그전에는 분명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녀가 요즘은 정말, '일취월장'의 연기를 하고 있다.

그 뚱뚱한 몸매가 그렇게 속시원한 몸매인 줄은 요즘 처음 알았다.

정말 연기를 잘한다, 라고 느끼게 하는 여자,

하긴 진정한 명배우란 '잘한다'라는 느낌도 넘어서야 한다지만. 그녀, 탤런트 양희경을 보고 있으면. 그 현실감의 캐릭터들이 정말 좋다.

어떤 경우엔 그녀의 웃음은 아주 속시원하게 다가온다.

아마도 미니시리즈를 보는 시각이 하루를 끝낼 때쯤인 저녁 무렵이라, 더욱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말하자면 가리는 곳이 많은, 이 세상 사람들 속에서 하루를 피곤하게 살고 난 저녁 무렵이므로 그녀의 뚱뚱하나 당당한 웃음은 더욱 속시원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녀는 말하자면 커튼을 내리고 있던 곳의 커튼을 활짝 젖히고 '우하하하…' 몸을 흔들며 '한 번 멋있게' 웃어준다고나 할까.

아무튼, 조연들은 우리들의 가린 곳을 주연 배우보다 잘 보여준다.

아버지 역, 어머니 역, 언니 역, 형 역, 동네 사람 역…. 그들은 분명 주연배우들보다 중요하다.

그들이 '잘 받쳐 주어야', 주연을 하는 어린 여자 탤런트, 남자 탤런트들은 더 예쁘고 근사해 보인다.

주연을 더 예쁘게, 근사하게 보이게 하는 만큼 더 바보 같게, 또는 더 뚱뚱하게 보이는 그들, 조연들. 그럼에도, 그들은 가려 있다.

이 참에 '우리 사회의 조연들'도 잘 살펴주자. 그들이 우리 사회의 주연들을 잘 받쳐주게 하자.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을 들으며…. '우하하하' 웃음소리를 들으며, '토대'가 건강한 사회, 그런 사회를 꿈꾼다.강은교 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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