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 들어섰을 땐 아버지가 9살짜리 아들의 콧물과 가래를 빼내고 있었다. 고무호스를 콧구멍에 넣고 버튼을 눌렀다. 주룩주룩 흘러나오게 하는 폼이 하루 이틀 했던 것이 아니었다. 필사적인 손놀림. 아들이 기도가 막혀 죽지나 않을까하는 처절한 부성애였다.
창훈(9)이는 '선천성 동맥 기형'으로 지난해 2월 병원에 실려왔다. 갑자기 코피를 터뜨리며 머리가 아파 죽겠다던 아들은 혈관 모양이 정상이 아니었다. 필요없는 혈관을 잘라내는 수술만 두 차례. 그 힘든 수술을 죽지않고 버텨낸 창훈이가 중환자실에서 준중환자실로 옮긴 것도 사흘 전이다.
"가망없다는 말 믿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이상구(46·달서구 상인동)씨는 창훈이의 산소호흡기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호흡숫자가 90 밑으로 내려가자 갑자기 일어서더니 새파랗게 질려버린 창훈이의 가슴을 몇 번 두들겨줬다. 창훈이는 숨통이 트이는 듯 곧 제 얼굴색을 찾았다.
"면역이 약해져 합병증이 올 가능성이 높답니다. 폐병이라도 오면 끝이랍니다. 끝..." 그 말투가 참 건조했다. 마치 남의 얘기인양 했는데 그렇게라도 않으면 곧 무너질 것 같단다. 이씨는 3개월 전 이혼했다. 아내도 자신도 지쳐버렸다. 만나면 다퉜고 돌아서면 후회했다. 그 세월만 벌써 1년이었다. 모든게 돈 때문이었다.
엄마는 아빠가 없는 틈을 타 병원을 찾는다. 일용잡부인 이씨가 일이 있을 때면 병원으로 와 아들 간호를 하고 돌아간다. 이혼 도장만 찍고 얼굴만 안 볼 뿐이지 창훈이만 나으면 다 잘 될거라고 말하는 이씨에게 창훈이는 아내와 자신을 잇는 유일한 끈이다. "그냥 창훈이만 다 나으면 우리 식구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겠지요."
큰딸 정은(21)씨는 대학을 포기하고 미용일을 배우고 있다. 얼른 돈을 벌어 동생을 살리겠다는 누나의 의지다. 집은 팔아서 병원비를 댔고, 곧 사글세 3평 방을 얻었다. 그렇게 쏟아부었는데도 병원비만 3천만원이 밀렸다. 큰 딸이 20살을 넘어 기초생활수급권자도 되지 못한다. 의료보호 2종. 그 혜택은 별로 없다.
너무 하얘서 실핏줄이 다 드러나는 창훈이의 피부는 약에 찌들려 누르면 푹 꺼져버릴 것 같았다. 입술을 힘들게 오무리며 뭔가를 말해보려는 그 애씀이 힘겨워 보였다. 한 손에 로보트가 그려진 카드를 얹어놓고 아빠에게 동화책을 읽어달랜다. 운동장에서 힘차게 뛰어놀아야 할 나이인데 그 모습을 지켜만 봐야 할 이씨의 마음은 오죽할까.
"애가 안 아팠을 때 제가 못해준 것이 왜 이리 생각나는지... 주중엔 일하고 주말엔 조기축구회 간다고 자주 놀아주지도 않았지요. 늦둥이라 참 이뻐했는데...그래도 시원하게 잘 생기지 않았습니까?"
'팔불출' 아버지가 창훈이의 머리를 구기듯 쓰다듬었다. '얼른 일어나 임마'라고 말하는 손놀림이었다. 그 느낌이 오는지 창훈이가 처음으로 웃었다. 아침에 병간호를 하고 있던 엄마가 같은 층 복도 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창훈이만 나으면 다 잘될거란 확신이 섰다. 서로 사랑해서 고달픈 투병생활을 떠넘기지 못했던 이 부부의 사랑은 식지 않았다. 창훈이는 아직 8차례의 혈관제거 수술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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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 : 앞으로 8차례의 혈관제거수술을 남겨놓은 창훈이는 아버지에게 그림책을 읽어 달라는게 유일한 즐거움이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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