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낸 세금은 어디에 사용될까? 알뜰하게 사용한다면 백성들은 정부를 믿고 생업에만 종사하면 된다. 그러나 긴요하지도 않는 일에 알장 같은 내 돈을 흥청망청 사용한다면 납세자는 분노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최근에는 소득은 늘지 않는데 이것저것 고지서가 나올 때마다 짜증스럽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하다. 공자도 '가혹한 정치(세금)는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也)'고 하였다.
작년 한 해 국민 한 사람이 납부한 세금(국세+지방세)이 평균 300만 원을 넘고 있다. 세금뿐 아니라 각종 기여금, 공과금도 크게 늘고 있다. 조세부담률은 20% 수준으로 일본의 17%보다도 높다.
국민들의 실질적인 부담이라 할 수 있는 국민부담률(조세+사회보장성 기여금)은 25%로, 미국의 29%나 일본의 27%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에서 추진 중인 각종 공약사업과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연·기금 재원확충을 감안하면 앞으로의 부담은 더욱 가파르게 올라갈 전망이다.
이런 증가속도는 OECD 회원국 가운데 매우 높은 편인데 정부는 30개 회원국의 평균 조세부담률이 27%이고 국민부담률은 38%라는 점을 들어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 높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잘사는 편이 아니다.
우리 경제규모가 세계 11위라고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GNI)은 세계 49위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지난 4년간 경제성장률이 4%대의 저성장에 머물고 있는데 조세수입은 연평균 12%나 증가하고 있으니 피부로 느끼는 세금의 중압감은 가히 짐작이 간다. 중진국 수준에서 유럽의 복지제도가 부러워도 높은 세금-낮은 성장-높은 실업에 시달리는 유럽병은 우리들을 고달프게 할 따름이다.
더욱이 심각한 문제는 우리의 자손들이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세대가 만든 엄청난 빚더미에 시달릴 것이란 점이다. 재정적자는 한 번 누적되기 시작하면 좀처럼 줄이기 어렵다. 이미 발행한 정부부채에 대한 이자를 매년 지급해야 하므로 정부부채 규모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이자 지급을 위한 세출규모가 자동적으로 늘어난다.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2004년 말 현재 203조 원으로 늘어났으며, 2008년쯤에는 무려 300조 원이 넘을 전망이다. 정부의 피나는 노력 없이는 재정적자의 증가와 국채확대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무릇 국가의 각종 계획이나 정책집행에는 예산이 따른다. 물론 국가경영상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빚이라도 내야 한다. 국방력의 강화나 국리민복이라면 누가 탓하겠는가. 다만 정치적인 공약을 위해서 불요불급한 일에 국민의 세금을 함부로 축낸다면 국민의 불만은 피할 길 없다.
미국 독립전쟁도, 프랑스 대혁명도, 그 이후 각국의 잦은 정권교체도 결국은 조세저항이 근본 원인이었음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최근 정당한 절차와 예산 마련도 없이 권력핵심의 일부 인사들이 개입된 황당한 사업까지 세상에 노출되고 있다. 이들에게서는 그 어디에서도 국민의 혈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의 각종 세제 개편으로 턱없이 늘어나는 세금 부담에 납세자들은 허리가 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국가예산은 먼저 가져다 쓰는 것이 임자라는 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공공부문을 '세금 먹는 하마'라고도 한다.
공공 부문의 비효율과 비대화는 단순한 정부실패로 끝나지 않고 민간 부문의 활력을 위축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경제포럼(WEF)은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경쟁력을 41위로 평가하고 있다. 정치적인 목적에 따른 재정투융자사업의 선정, 전 국토를 투기장화하는 도시개발계획, 시민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 현재 및 장래의 예산증가를 고착화시키는 포퓰리즘적 정책은 국가적 차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예산의 편성과 심의과정에 대한 투명성도 우려스럽다. 서양에서는 일찍이 '대표 없이 세금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예산심의는 실망스럽다. 국민의 부담증가는 안중에 없고 국회의원, 행정부처, 공기업, 지자체 간에 소위 나눠 먹기식 잔치가 벌어진다.
예산 계수조정 소위원회에서는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밀실흥정을 한다. 자기 돈이라면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들이 예산에 대하여 무관심하면 국가 예산은 주인 없는 돈이 되고 만다.
이제 국민들 스스로 자신이 낸 세금이 제대로 쓰여지고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감시해야 한다.
이진무/KAIST 금융공학연구센터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