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20일 정상회담을 가졌으나 역사 문제 등 현안에 대한 인식 차만 재확인한 채 끝났다.
정상회담 직후 녹지원에서 가진 설명에서 역사공동연구위원회 산하의 교과서 위원회 신설과 제3의 추도시설 건립 검토 등 두 가지 합의사항에 대해 "아주 낮은 수준의 합의"라고 했다.
게다가 "이 합의는 오늘 조율됐다기보다 외교채널과 간접대화를 통해 사전 조율된 결과"라고 말했다.
새 추도시설과 관련해 노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가 일본 국민여론 등 제반 사항을 고려해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했다가 정정했다.
"사전에 긴밀히 조율된 문장이라 한 자라도 틀리면 안 되기 때문"이라며 '약속'이란 말을 빼야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내가 이렇듯 조심스럽게 내용을 전달하듯이 이번 회담은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었다"며 회담 내용을 정리했다.
회담이 불만족스러웠고 고이즈미 총리와의 2시간 대화가 불편한 시간이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내내 표정도 어두웠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이 반성할 것은 반성하며 그 위에서 미래를 향해 솔직하게 대화하는 게 양국 신뢰우호 관계 발전과 강화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한다"면서 "역사 문제에 대한 노 대통령의 의견을 매우 솔직하게 잘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일본에서 시인으로 활동했던 고 손호연씨의 '절실한 소원이 나에게 하나 있지. 다툼없는 나라가 되라는'이란 시 구절을 소개하며 "이 노래는 손씨의 마음이자 양 국민의 희망이고 바람"이라고 했다.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정우성 대통령 외교보좌관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역사를 보는 인식에 있어 노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 사이에 어떤 의견 차이 같은 게 있었다"고 전했다.
정상회담 2시간 중 1시간 50분 동안 두 쟁점과 관련된 대화를 했으나 겉도는 대화만 오간 생산성 낮은 회담이었음을 시사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자신의 신사 참배에 대해 '전쟁 미화나 정당화가 아니라 본의 아니게 참전한 희생자의 추도가 목적'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전후 60년간 일본이 비핵화 원칙이나 방위 문제에서 주변 국가들에 위협을 준 적이 없고 군사력을 억제해가며 경제발전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야스쿠니 신사에 가보면 과거의 전쟁을 자랑스러워하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전시해놓고 있다는 말도 듣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의 전쟁과 전쟁 영웅을 미화하고 이런 것을 배운 나라가 이웃에 있을 때, 특히 이런 나라가 막강한 경제-군사력을 갖고 있을 때 그 나라로부터 여러 번 괴롭힘을 당한 인근 나라의 국민은 미래를 불안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되받았다.
역사 교과서와 관련해 노 대통령은 "일본 정부는 검인증 교과서 제도에 개입할 수 없고 저자의 자유라고 얘기하는데 이런 것을 우리 국민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이런 교과서를 읽고 자라는 세대들이 어떤 관념을 형성하고 가치관을 갖게 되느냐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나라와 나라 간에 의견 차이는 있을 수 있다"며 "여러 나라 간에는 전체를 보면서 우호 관계를 발전시키고 교류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장기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여유를 부렸다.
노 대통령은 "총리와 자주 만나 사진도 찍고 협력방안도 논의하지만 역사인식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앞으로 한-일 간에 조그마한 계기가 있어도 폭발할 소지가 있고 상호 불신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두 정상은 연내에 다시 실무회담 성격으로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그동안 이 같은 인식과 입장차가 해소되는 데 어려움이 많아 성과 있는 만남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게 외교관련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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