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개그맨들 "어찌해야…"

입력 2005-06-20 16:00:50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자고나면 사고가 터지니 이거야 원 고개를 들 수가 있어야죠. 정말 날잡아서 살풀이라도 한번 해야할 것 같습니다."

얼마전 조문식 KBS 희극인실장은 구봉서로부터 호되게 질책을 당했습니다. 다름아닌 잇달아 터지는 코미디계 불미스런 사건들 때문이었습니다. 연예가 안팎 유명인사들이 잔뜩 모여 코미디박물관 청사진을 밝히는 자리에서였는데요.

"도대체 실장이란 놈이 뭐하는 거냐? 선배들이 일궈놓은 코미디계의 위상을 하루아침에 뭉개놓고도 할 말이 있느냐?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할 것 아니냐? 선배도 모르고 후배도 모르고 인기만 있으면 된다는 돼먹지 못한 놈들은 방송에서 쫓아버리라구." 배삼룡과 함께 현존 코미디계 거두중 한명이란 점에서 구봉서의 말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알다시피 올초 개그맨 L의 성폭행사건(얼마전 무혐의로 매듭지어짐)에 이어 K의 성폭행사건이 또 터졌습니다. 개그맨 박승대와 후배개그맨들간의 알력으로 비쳐진 '웃찾사'의 노예계약 파문도 방송연예가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최근에 터진 K의 사건은 더이상 뒷감당이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람 사는 곳에 사건사고가 없을 리가 없고, 불미스런 일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왜 하필이면 같은 연예인중에 개그맨들만 그런 추잡한 일에 연루 되느냐"는게 동료개그맨들이 느끼는 자조인 것같습니다.

경찰조서에 따르면 K는 18일 연예인 지망생을 유인해 성폭행한 혐의(강간치상)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는데요. 유학생으로 서울에 머물던 상대 여자는 "방송국 관계자를 만날 수 있다"는 K의 말을 듣고 새벽 4시에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로 동행했다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K는 "쌍방합의에 따라 호텔로 간 것은 사실이지만, 성폭행은 커녕 옷도 벗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L군이 같은 혐의로 구속까지 됐지만 결국 무혐의였음을 고려하면 그 진위여부를 속단하기는 이른 것 같습니다. 새벽 4시에 두 남녀의 호텔행만으로 떠올릴 온갖 추측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지요.

문제는 그 진위여부를 떠나 왜 유쾌하지 못한 일로 자주 스포트라이트를 받느냐는 것이겠지요.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는 개그맨 J씨 역시 비슷한 일로 곤욕을 치른 바 있지요. 그 역시 법적인 억울함은 벗었다지만 그 일로 본인은 물론이고 동료들도 한때 결코 떳떳할 수 없는 쓴 맛을 맛봤으니까요.

방송활동을 병행해 사업가로 변신한 유부남 개그맨인 K는 평소 모범적인 자기관리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적이고 깔끔한 이미지에다 스캔들 한번 난 적이 없었으니까요. 동료개그맨들은 그의 오명이 안타깝긴 하지만 마치 자신에게 덮씌워지기라도 한듯 거론 자체를 피하려고 합니다. 제 얼굴에 침뱉기라는 것이지요.

조문식 실장은 지난번 L의 사건때도 그랬지만 '실수든 고의든 미운 자식도 결국 내 자식'이란 이유로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과거 '사고공화국'이란 오명을 얻은 전직 대통령이 있었지요. 조문식 실장이야말로 '잇달아 터지는 사고'에 어렵게 쓴 감투마저 내놓아야 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옆에서 도움을 안주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게 세상사 아니던가요? "선배들한테 질타를 받는 것은 백번이고 천번이고 감수 할 수 있지만, 누군가 도덕적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에 쥐꼬리만한 감투나마 던져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각히 고민중"이라는 조문식의 하소연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스포츠조선 강일홍 기자 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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