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 때 비행기를 탄 채 광장 상공에서 일부러 몇바퀴 선회한 뒤 등장하는 수법을 썼다. 마치 하늘에서 강림하는 위대하고 신비로운 존재인 양 집회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권력자의 카리스마를 만들어 냈다.
아무나 쉽게 만나기 어렵고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 비밀스러운 베일뒤에 가려 있는 듯한 분위기로 덧씌운 인물은 신비로운 존재 같은 일종의 카리스마를 지니게 된다.
김정일이란 인물도 그런 점에서 남한이나 자유세계 사람들에게는 신비로운 스타 같은 인상을 심어주는 연출에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북한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김정일이란 사람을 한번 만나서 악수라도 하고 사진 한장 찍을 수만 있다면 대단한 행운이요 역사적이랄 만큼 큰 자랑거리로 여기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김정일 위원장이 국민들을 굶기고 인권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며 군사력 증강에만 매달리고 있는 비평화적 세습권력자라는 비판 같은 건 묻혀버리고 도외시된다. 가려진 베일 안에서 연출되는 '신비스런 스타'의 이미지는 부정적 비판이나 허구적 실체를 덮고도 남는 속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세계평화와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인도적 가치로 본다면 비판받아야 할만한 인물이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한번 만나는 것만 해도 굉장한 일'이되는 인물로 뒤바뀌어 있는 건 김정일식의 카리스마 만들기가 성공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지난주 남한의 통일부장관과의 '깜짝만남'에서도 김정일식 카리스마는 언론과 정부 여당을 '대단하고 역사적인 경사'로 들뜨게 만들었다.
다행히 이번 만남은 북핵문제와 6자회담 참석 등 큰 현안들이 걸려 있고 희망적인 말들이 오간 만큼 지난 10년간 15차례의 이런저런 만남들 보다는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그만큼 대단하고 역사적인 경사처럼 약간은 들떠도 괜찮을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깜짝 만남만은 과거 여러차례의 정치적 만남에서 보아오고 겪어봤듯이 정치적 제스처나 카리스마 만들기로 끝나는 만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와의 만남에서 빈번히 그랬듯이 국민들은 언론에 드러난 내용이외에 또 달리 무슨 말이 오갔으며 어떤 쪽지나 메시지가 전달됐는지 깜깜하게 모른 채 계속 세금으로 쌀이나 비료만 대주는 식의 대북접촉 방식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바뀌어야 한다.
2000년 평양에서 DJ와 만나 차안에서 나눴다는 대화의 내용은 아직도 비밀로 돼 있다. 무슨 밀담이 있었기에 그후 5년간 계속 퍼주기만 하고도 핵 개발 억제나 6자회담, 이산가족 무제한 상봉, 국군포로 송환, 탈북자, 인권문제 등 현안은 한 가지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끌려가는 인상'만 주고왔느냐는 의문은 많은 국민들의 생각일 것이다. 이번에도 노 대통령이 보냈다는 구두 메시지 내용이 무엇인지는 비밀에 부쳐졌다.
외교관계 특히 미'일'러시아'중국이 눈에 불을 켜고 보고 있는 남'북 관계에서 경솔하게 드러낼 수 없는 전략적 정치적 한계는 있을 수 있고 국익과 민족의 공동익을 위한 비밀이라면 감춰져도 국민들은 궁금증을 참아 줘야 한다.
그러나 그런 협조와 인내의 조건은 그 밀담이나 비밀 메시지가 가시적이며 민족공존에 도움되는 어떤 결과가 분명하게 나타날 때의 얘기다.
자칫 부시를 각하로 부르고 통일장관을 만나주고 귓속말로 친근감을 표시하는 것들이 김정일식의 카리스마를 이용한 시간벌기 전략이 돼버리면 밀담 비밀 지켜주기는 놀림받는 외교에 지나지 않게 된다.
지금 우리는 밉든곱든 동족의 지도자를 믿으며 손잡고 나가면서 민족공존이란 지상의 목표를 다치지 않게 해야 하지만 그들의 위장된 카리스마나 시간벌기 작전에 휘둘리는 티끌만한 가능성도 경계는 하면서 가야 한다.
핵이 있다고 선언한 지 한 달도 안돼 '와서 봐라 하나도 남길 이유가 없다'거나 끊임없는 6자회담 참석권유를 외면해 왔으면서도 '못갈 이유 없다'는 모순된 말을 해도 모순에 대한 우려를 지적하기보다 '통 크고 현명한 결단'이라고 보도하는 남한언론의 들뜬 분위기에서 김정일의 카리스마는 이제 남한 곳곳에서 꽤나 먹혀들고 있음을 보게 된다.
면담의 약속이 지켜지면 그가 스타가 돼도 나쁠 것 없지만 또다시 빈말이 되면 그때는 우리도 그의 위장된 카리스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급히 들뜨지 말자. 아직은 그를 냉정히 유의하면서 믿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