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당한 불우 남매 돕자"

입력 2005-06-18 10:11:33

영천시 화남면 귀호리 주민들 앞다퉈 성금

40여 가구 100여 명이 살고 있는 영천시 화남면 귀호리. 조용한 농촌마을의 주민들이 요즘 바빠졌다. 농번기 때문만은 아니다.

주민들 관심은 온통 이 마을의 한 남매에 쏠려 있다. 배수현(18·여·영천전자고 3년)·성민(17·영천전자고 2년) 남매가 지난 달 25일 등굣길에 큰 교통사고를 당한 것.

사고는 이날 주번이던 수현이가 통학차량이 늦자 마침 지나가던 친구 오토바이를 얻어 탄 게 화근이었다. 고개를 넘어 커브 길을 돌던 오토바이는 맞은 편에서 오던 택시와 정면 충돌했고 오토바이 운전자는 목숨을 잃었다. 수현이는 한쪽 눈을 실명하고 골반 뼈가 부러지는 등 목숨만 겨우 건졌고 성민이는 허리와 목 등 전신의 뼈가 부러지는 중상. 경찰 조사 결과 오토바이가 중앙선을 넘은 것으로 밝혀져 보상도 전혀 받지 못했다.

주민들이 순서를 정해 남매의 병수발을 들고 성금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비단 이들 남매가 공부 잘하고 착한, 마을 어른들의 귀염둥이라서만은 아니다. 이들 남매를 친자식처럼 돌봐주는 김용주(57)·김남숙(52)씨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 주민들을 감동시킨 때문이다.

이들의 인연은 지난 1994년 시작됐다. 가정용 욕조와 세면대 등을 만드는 가내 수공업을 하는 김씨의 공장에 일면식도 없는 수현이 아버지(45)가 일을 시켜 달라며 찾아왔다. 남매의 아버지는 장애 등으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김씨 자신도 하루 10만원 벌이가 힘든 처지였지만 엄마 마저 가출, 돌봐줄 이 없는 어린 남매의 눈빛이 너무 애처로워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부인 김씨도 흔쾌히 이들을 자식처럼 받아들였다. 이날부터 김씨 부부는 친부모를 대신, 남매의 부모가 됐다. 학부형 모임은 남편 김씨가, 소풍과 운동회는 부인이 직접 챙겼다. 김씨의 노모(80)도 남매를 친손자 이상 따스하게 대해 주고 있다. 6년전 집을 새로 지을 때도 마당에 똑같은 크기의 집을 따로 마련해 줘 남매가 편안히 지낼 수 있게 했다.

"단 한번도 남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잘한 일이 있으면 칭찬하고, 잘못이 있으면 호되게 야단도 쳤어요."

김씨 부부의 남다른 정성으로 남매도 말썽 없이 잘 자랐다. 수현이는 학교에서 1, 2등을 도맡아 놓고 하는 우등생이고 성민이는 운동이라면 못하는 게 없을 정도로 활달해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좋다.

남매가 다친 후 김씨 부부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매일 밤 교대로 병실에서 밤을 새운다. 문제는 수천만원이 넘는 병원비. 사고 후 이들 남매는 각각 3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했지만 완치된다는 보장도 없다.

"병원비로 자칫 집을 잡혀야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애들을 살리는 게 우선이지요. 수현이는 애들을 유난히 좋아해 꼭 훌륭한 유치원 선생님이 되기로 했는데..."

김씨가 남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됐다면 화남면 주민들은 '천사의 숲'이 되어주고 있다. 김씨와 수현이 남매의 딱한 소식이 삽시간에 퍼지자 이번에는 주민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것.

곧바로 모금운동이 펼쳐졌고 동네주민들은 앞다퉈 주머니를 열었다. 남매의 학교 친구와 선생님들의 모금을 시작으로 마을에서는 새마을부녀회·이장모임·농업경영인회·의용소방대·청년회·농협 등 화남면 10여개 단체와 종교단체도 모금에 동참했다. 선거법을 의식한 한 주민은 금일봉을 몰래(?) 전달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화남면 새마을부녀회 양근순 회장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어른들에게 인사성 밝고 동네 아이들에게는 누나와 형 노릇을 톡톡히 하는 등 구김살이 없었는데 사고를 당해 너무 안타깝다"며 "우리마을의 아들 딸이나 마찬가지인데 우리 손으로 꼭 살려내겠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의 아낌없는 사랑과 함께 영천시 화남면이 천사들의 마을이 되고 있다. 영천·이채수기자cslee@imaeil.com

사진 : 배수현, 성민 남매를 자식처럼 키운 김용주씨(오른쪽)가 교통사고로 전신의 뼈가 부러지고 한쪽눈이 실명돼 병상에 애처롭게 누워있는 아이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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