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2군 선수들 '희망'을 먹고 산다

입력 2005-06-18 10:16:45

삼성 라이온즈 2군 선수들. 이들은 '희망'을 먹고산다. 2군 선수들이 받는 평균 연봉은 2천만 원. 연봉도 연봉이지만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신분에 대한 불안이다. 1군 선수들은 부진하면 2군에 잠시 내려가면 그만이지만 이들은 유니폼을 벗을 수밖에 없다. 퇴로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내일의 희망을 붙들고 하루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우상은 최근 은퇴한 한화 장종훈. 연봉 300만 원을 받고 연습생으로 입단해 국내 최고 타자로 우뚝선 뒤 화려하게 은퇴한 장종훈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연봉 7억5천만 원의 심정수는 팀 동료지만 천상과 지상의 차이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이들에게도 냉혹한 프로 세계가 손에 잡힐 듯했던 시절이 있었다. 초· 중· 고· 대학 시절 내로라하는 선수들이었던 이들은 프로구단으로부터 지명을 받을 때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현실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북고-영남대를 졸업하고 지난해 삼성으로부터 1차 지명을 받은 왼손투수 백준영(23). 지명 받은 직후 하루에도 수십 통의 축하 전화를 받았다. 태어나서 가장 기뻤던 때가 이때였다. 하지만 지난해 대만 슝디 엘리펀츠와 친선 경기에서 중간계투로 나와 한 이닝에 4실점하며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시범경기에 잠깐 등판한 이후 줄곧 2군에서 훈련 중인 백준영은 투구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130km대의 스피드에 머물고 있다.

빨리 1군에 올라가야 한다는 마음은 굴뚝 같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아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주변으로부터 "아직도 2군에 있냐"며 핀잔 섞인 질문을 받을 때면 말못할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때론 컨디션이 좋아 스피드가 140km 이상 나오지만 1군에서 불러주지 않을 때는 '내가 뭐하고 있나'라는 자괴감도 든다. 대학 동기인 현대 투수 손승락이 1군에서 자리를 잡아가면서 뭔지 모를 조급함이 가슴 속에 똬리를 틀기도 한다.

경산 볼파크에서 생활하는 백준영은 매주 월요일, 휴식일이면 부모님이 사는 집(서구 내당동)을 찾는다. 말없이 지켜봐주는 부모님이 무척 고마울 뿐이다. 또 대학 시절부터 사귄 여자 친구가 있어 큰 힘을 얻는다. "부모님과 여자친구를 생각해서라도 후반기에는 꼭 1군에 올라가겠다"고 다짐한다.

일부 선수들은 포지션을 바꿔서라도 새로운 희망을 찾기도 한다. 4년 동안 줄곧 2군에 머문 임세업(22)은 원래 외야수였다. 막강한 삼성 외야진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어깨가 강하다는 이유로 올해 투수로 전향했다. 하지만 외야수와 투수의 투구폼이 달라 생각만큼 기량이 늘지 않는다. 임세업은 "마지막 발악이죠"라며 씁쓸하게 웃은 뒤 "그래도 포기란 있을 수 없죠"라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2군 선수들에게 실전이란 없다. 끊임없는 연습만이 있을 뿐이다. 2군 리그가 별도로 있지만 이마저도 1군에 올라가기 위한 연습 과정이다. 오전 7시 10분 기상과 동시에 산책과 체조로 몸을 풀고 식사 후 12시까지 펑고, 피칭, 타격 훈련 등을 하고 오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 저녁 7시부터 야간 훈련으로 이어진다. 이들에겐 해방구가 없다. 하루 종일 훈련에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들어가면 잠에 곯아떨어지기 일쑤이다.

2군 선수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타성'이다. 3, 4년씩 2군에 머물다보면 목표 의식이 없어지고 현재 생활에 별 생각없이 물들어 버린다는 것. 프로 15년차 외야수 신동주는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자신의 계획대로 밀고가는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1군에서 뛸 수 있다"고 후배들에게 충고한다. 이들 사전에 포기란 없다. 지금은 진흙밭을 뒹굴지만 내일의 주인공을 꿈꾸는 2군 선수들. 오늘도 1군을 향한 희망으로 몸을 달군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지금은 힘들지만 내일의 희망을 품고 땀을 흘리는 프로야구 삼성 2군 선수들. 사진 정면이 투수 백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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