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사찰/청아한 가람의 품

입력 2005-06-17 15:30:18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지리산은 높고, 넓고, 그리고 깊다. 해발 1천m가 넘는 산봉만도 20여 개. 깊은 골짜기 마다 수려한 가람(사찰)이 들어앉아 있다. 그래서 지리산 등반은 언제나 가람의 산문(山門)에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 천은사

구례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고갯길 초입에 위치해 있는 천은사. 규모는 크지 않으나 은근히 정이 가는 절이다. 그만큼 살갑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일주문 현판 글씨체. 구불구불 흐르는 물줄기 같기도 하고 지리산 속에 부는 바람 같기도 하다.

천은사는 절 앞 경치가 그만이다. 절 입구 계곡의 싱그런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는 정자 수홍루는 바로 앞 저수지와 어우러져 은은한 정취를 풍긴다. 그 아래 맑디 맑은 계곡물이 흐른다. 졸졸졸..... 그 소리가 너무 청아해 속세를 벗어난 기분이 들게 한다.

천은사는 소박한 절이다. 단청도 그리 화려하지 않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가고 예스럽다.

극락대전. 아담한 건물이지만 가운데 앉은 게 부잣집 며느리같다. 다소곳한 자세며 위엄이 엿보인다. 극락대전 좌우로 350년이 넘은 동백나무가 지키고 있다. 좌우 대칭이 되니 극락대전이 더 빛난다. 극락대전 오른쪽에는 보리수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다.

천은사의 매력은 극락대전 뒤쪽에 있다. 아름다운 계곡 건너편에 방장선원이 있고, 방장선원 옆으로 돌 축대와 응진전, 팔상전, 관음전, 삼성각이 줄지어 있다. 건물 자체는 큰 특징이 없지만 극락대전 앞 공간이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 화엄사

화엄사는 천은사에서 동쪽으로 5.5km 떨어진 곳에 있다. 그윽한 노송 숲에 둘러싸여 독특하고도 경건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천년 고찰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대웅전 왼쪽편에서 위용을 뽐내는 각황전. 현존하는 목조건물로선 국내에서 가장 크다. 겉으로 2층으로 보이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내부는 하나의 층으로 되어 있어 웅장감을 준다. 각황전 앞뜰에 서 있는 석등은 높이 6.3m, 직경 2.8m로 국내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통일신라시대 찬란한 조각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각황전과 어울려 운치를 더해준다.

화엄사에 가면 꼭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각황전 뒤에 있는 4사자3층석탑이 그것이다. 왼편으로 백팔계단을 타고 오르면 효대라는 낮은 언덕이 있고, 그곳에 석탑이 예쁘게 자리잡고 있다.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며 세운 탑으로 세련된 조각솜씨를 한눈에 느낄 수 있는 걸작이다.

화엄사 입구에 있는'시의 동산'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 조각 작품과 함께 돌에 시가 새겨져 있는 동산이다. 꽃으로 꾸민 오솔길이 나 있어 도란도란 걸으며 산책을 즐기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특히 연인끼리라면 데이트코스로 그만이다.

# 연곡사

연곡사는 화엄사에서 나와 섬진강을 따라 하동쪽으로 20여km 떨어진 피아골 입구에 있다. 피아골은 한국전쟁 직후 빨치산의 아지트. 이를 토벌하려는 군경과의 치열한 격전이 벌어진 곳이다. 주변에서는 옛날 지리산 주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층층이 잘게 쌓아 만든 계단식 논두렁의 곡선미와 가파른 언덕배기에 둥지를 튼 가옥들이 도로변 깊은 계곡과 어우러져 새로운 정취를 자아낸다.

연곡사의 보물은 부도다. 국보급 부도가 2개나 있다. 먼저 대적광전 뒤에 있는 국보 53호인 동부도. 이 부도는 통일신라시대의 부도 가운데 가장 형태가 아름답고 장식과 조각이 정교한 작품이다. 천년이 넘은 부도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보존상태가 좋고, 정교하고 아름답다.

동부도에서 약 40m 더 올라가면 국보 제54호 북부도가 있다. 동부도가 화려하다면 북부도는 웅장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동부도가 다보탑 같다면 북부도는 석가탑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연곡사 뒤편으로는 피아골이 펼쳐져 있다.

◇ 운조루(雲鳥樓)

화엄사와 연곡사 사이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운조루는 조선시대 전형적인 양반의 집이다. 원래 99칸 짜리 집터였으나 현재 60여칸쯤 남아있다. 대문과 행랑채, 사랑채, 안채, 사당, 화장실이 보존돼 있다.

안채에 2층 난간이 있는 것이 이채롭다. 아녀자들을 위한 곳이다. 바깥세상을 보면서 힘든 시집살이의 시름을 달래라는 배려다.

운조루를 빛나게 하는 것은 행랑채에 있는 쌀통이다. 나무로 된 쌀독은 가난한 마을사람이 끼니를 걱정하지 않도록 음덕을 베풀었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가훈과 더불어 길이 빛나는 운조루의 상징물이다. 집안 곳곳에 옛날 생활도구도 보관돼 있어 지나는 길에 한번쯤 들를 만하다.

사진·박순국편집위원 tokyo@imaeil.com

◇ 가는 길

올림픽고속도로를 타고 남원IC에서 빠져나와 구례'하동 방향 19번 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밤재터널을 통과하면 지리산온천이고, 조금 더 가면 천은사로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약 10분 가면 지리산 천은매표소가 나오고 이를 지나면 바로 천은사이다.

화엄사는 천은사에서 동쪽으로 5.5km 떨어져 있으며, 연곡사는 다시 하동방면으로 22km 떨어진 피아골 계곡에 위치해 있다. 운조루는 화엄사와 연곡사 중간 지점에 있어 연곡사 가는 길이나 돌아오는 길에 들르면 된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