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헌신·봉사…너무나도 겸손하신 당신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 매일신문이 주최하고 대구지방보훈청이 주관하는 '2005 매일보훈대상 시상식'이 17일 오후 3시 대구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매일신문은 올해 상이군경, 유족, 미망인, 장한 아내, 특별 무공수훈 5개 부문에 대구, 경북 지역에 각 5명씩 모두 10명의 수상자를 선정했다. 전쟁의 쓰디 쓴 상처를 안고도 꿋꿋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전후세대의 명실상부한 모범이 되고 있다.
팔공산·양구전투서 용맹하게 싸워
#상이군경 부문 이선우(71·서구 내당4동)씨
1934년 2월 10일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에서 '이종업'씨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그 해 8월 15일 입대했다. 육군 제 10교육대에 입소한 후 팔공산 전투에 참전, 1951년 11월 양구전투에서 총탄에 맞아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이듬 해 명예 제대했다. 7식구를 부양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은 끝에 대구지방전매청에 취직해 33년 간 국가 산업 발전을 위해 근무했으며 몇 차례 표창과 공로상을 수상했다. 상이군경회 달서구지회 회원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2남 1녀의 자녀들을 잘 키워냈으며 매월 현충탑 정화운동에 참여하는 등 사회봉사활동에 적극적인 국가유공자로 주위의 칭찬이 자자하다.
아들 잃은 아픔 봉사로 이겨내
#유족 부문 정윤호(61·남구 대명9동)씨
정씨의 아들 정휘인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의무 경찰에 자원입대했으나 지난 1993년 근무 중 교통위반 차량에 치여 21살의 젊은 나이로 숨졌다. 고 정휘인씨는 당시 달서경찰서 성서파출소 파견 근무 중이었다. 경북 영양군 영양읍 현2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막내 아들의 순직으로 한동안 실의에 빠져 식음을 전폐하다 이웃과 친지들의 격려로 지역사회를 위한 각종 행사에 적극 참여하게 됐다. 지난 2001년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대구지부 남구지회장에 임명되면서 홀몸노인들을 방문해 말벗이 되어 주는 등 사회복지시설과 불우이웃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새벽열차 번개시장 왕복 두 아들 뒷바라지
#미망인 부문 김두주(69·북구 침산동)씨
김씨는 1957년 전장에서 총상을 입어 육군통합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남편 김두주씨를 만나 결혼했다. 남편은 1950년 10월 7사단 5연대에 자원입대한 후 강원도 철원전투 등에 참여했다가 원주전투에서 북한군의 총탄에 맞았다. 하지만 그 상처가 깊어 진통제와 항생제로 하루 하루를 버티던 남편은 1967년 8월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둔 채 세상을 등졌다. 갑자기 한 가정의 가장이 된 김씨는 새벽열차를 타고 농촌으로 가 잡곡을 거뒀고 번개시장에 내다팔면서 생계를 연명했다. 맏아들을 국가공무원으로, 차남은 은행원으로 키운 그는 차츰 생활이 안정되자 주위의 불우이웃들을 도우며 남은 생을 살고 있다.
한 가정 일으켜 세운 강인한 큰 며느리
#장한 아내 부문 정길자(53·달서구 죽전동)씨
상이군경 1급 권병희씨의 아내 정길자씨는 군대에서 시력을 잃은 남편과 평생을 함께 하며 시동생, 시부모를 모시면서 3남매를 교육시켰다. 정씨는 결혼 직후 입대한 남편이 시력을 상실한 채 돌아왔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고 노점상을 차려 한푼 두푼 모으기 시작했다. 5년 동안 죽을 힘을 다한 끝에 작은 식당을 장만한 그는 3남매를 은행원과 통신회사 회사원으로 건강하게 성장시켰다. 또 남편이 대구실명특별지회 지회장으로 임명되자 모든 사무를 보조하면서 회원 간의 친목 도모를 위해 힘썼으며 성서 신협에서 저축상을 받기도 했다.
눈을 잃은 남편의 반려자로, 시부모의 큰 며느리로 살았던 정씨는 감당하기 힘든 삶을 극복한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다.
사선 넘아들며 첩보수집 공군 창설 멤버
#특별 무공수훈 부문 박찬형(76·동구 방촌동)씨
1929년 11월 23일 경북 의성군 가음면 순호리에서 5남 중 3남으로 출생한 박씨는 1948년 5월 육군 제1연대에 자원입대했다. 1949년 공군 창설 멤버로 참여한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한미합동 정보부대요원으로 공군의 특수정보임무를 수행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활동 속에서도 정확한 첩보로 혁혁한 공을 세운 박씨는 1952년 10월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제대 후에는 보라매회 대구지부 관리부장으로 14년 간 봉사활동을 했으며 1991년에는 무공수훈자회 대구시지부 동구지회 사무국장을 맡아 연중 실시되는 거리질서 캠페인, 태극기 달기운동, 청소년 선도 운동 등에 동참하고 있다.
후배 위해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 건립 앞장
#상이군경 부문 최기영(74·경북 포항시 북구 우현동)씨
1950년 8월 3사단 23연대 학도병으로 자원 입대한 최씨는 그 해 8월 29일 경북 포항지구 전투에서 오른쪽 고막이 파열되고 몸 이 곳 저곳이 파편으로 상처를 입원 뒤 이병으로 명예제대했다. 1983년 포항지구전몰학도충혼탑관리 초대회장을 역임했고 육군3사관학교 격전지 안보강사로 12년 간 사관후보생 교육에 힘썼다. 또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 건립에 평생을 바쳤으며 청소년 나라사랑 봉사회를 창립, 청소년 봉사정신 참양에 크게 기여했다. 86년 국가보훈처장 표창, 89년 포항시장 표창 이후 국방부장관 표창 등 모두 12개의 표창 및 감사패를 받았다.
전후 복구공사 토지 1천평 기부
#유족 부문 이병수(75·경북 울진 읍내리)씨
이씨는 1984년 9월 23일 해병대에서 근무하면서 서해안 강화지구에 침투한 간첩수색 작업에 나섰던 아들 이문균씨를 잃었다. 이씨는 1950년 6·25전쟁 때 울진농고 2년 중퇴 후 육군에 입대, 일등상사로 전역했다. 그는 1965년 고향의 도로개설 공사에 자신의 토지 1천여평을 선뜻 내놓았으며 1989년에는 울진군유족회 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보훈기관 건립 및 충혼탑 보수에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올해에는 군예산 4천만원을 확보해 오는 7월 보훈회관 진입로 및 보수공사를 앞두고 있다. 15년 간 환경보존운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1993년 경상북도지사 표창, 94년 울진군수 표창, 98년 국가보훈처장 표창장을 수여했다.
부부새마을지도자로 지역발전 공헌
#미망인 부문 박복연(65·경북 경주 건천)씨
박씨의 남편 임완택씨는 1950년 11월 육군에 입대, 이듬 해 6월 큰 골절상을 입고 병장으로 제대했으나 상처 악화로 1977년 결국 세상을 등졌다. 투병생활을 하던 남편 곁에서 농업과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렸고 1971년에는 남편과 함께 부부새마을 지도자로 임명돼 지역 발전에 힘썼으며 남편이 새마을 국민포장을 받을 수 있도록 내조했다. 남편을 잃은 후에는 3남1녀에 시어머니를 돌보며 사과 과수원도 시작했다. 1971년에는 경주시미망인 지회장으로 활동했으며 매년 명절이면 불우이웃에게 생필품을 전달하고 위문금 100만원씩을 내놓았다. 1982년 미망인회 경북지부장 공로패 수상, 1996년 대구지방보훈청장 표창, 2000년에는 경상북도지사 표창 등 다수 수상했다.
실명 남편 결혼 당당한 사회인으로 변화
#장한 아내 부문 이상희(75·경북 영천시 야사동)씨
이씨의 남편 김용만씨는 6·25전쟁 중 강원도 현리에서 벌어진 중국군과의 전투에서 두 눈을 잃어 상이군경 1급 국가유공자가 됐다. 이씨는 전쟁에서 눈을 잃은 오빠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는데 "평생을 남편의 두 눈과 손, 발이 되겠다"며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혼했다. 남편은 실명이라는 큰 장애로 실의에 빠졌지만 아내의 도움으로 상이군경회 영천군지회 분회장직을 10년 간 역임했고 경상북도지회 5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남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이씨는 2남 3녀 모두를 훌륭히 교육시켜 장남은 영남대 법대를 졸업, 지금은 대구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가 돼 활동하고 있다.
인천·연산상륙작전서 혁혁한 전공
#특별 무공수훈 김석충(73·경북 구미시 송정동)씨
1932년 2월 26일 북제주군 애월읍에서 독자로 출생한 김씨는 애월공립중학교 4학년 재학시절 6·25전쟁이 발발, 학업을 중단하고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 인천·원산상륙작전에 참전해 혁혁한 공을 세운 그는 1951년 3월 서울방어작전 중 하나였던 장단지구 사천강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명예 제대했다. 재향군인회 안보강사로 젊은이들에게 안보의식을 심어준 그는 초대 무공수훈자회 구미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까지 5대에 걸쳐 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불우이웃 돕기와 회원 자녀들의 장학금 지원에 힘쓰고 있는 김씨는 2004년 구미시에 건의해 동락공원 안에 전국 최대 규모의 호국용사 기림터를 건립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