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광장에 서다

입력 2005-06-17 10:41:18

김정남 지음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구하던 시절이 있었다. 민주화된 세상에서 한 번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던 그런 시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 세월이 있었다.

30여 년이나 계속된 이땅의 군부독재 시대. 한편으로는 그것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시대이기도 하다. '진실, 광장에 서다'는 부제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에서 보듯 5'16 군사쿠데타에서부터 6월 항쟁까지의 군부독재와 민주화운동을 지근거리에서 보고 듣고 참여해 온 당사자가 그 시대를 그리고 저자 자신의 인생역정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6'3사태 배후 인물로 구속된 이래 30여 년 동안 민주화운동을 막후에서 주도했던 김정남씨. 재야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김영삼 정부 때 대통령 교육문화사회수석 비서관을 지낸 인물이다.

김씨는 이 책에서 민주화운동 30년의 통사를 기록하기보다는 좀더 구체적인 방식으로 그 시대에 접근한다. 언론에 보도된 기사,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의 증언, 시위에서 외친 구호, 그때 발표된 성명과 선언문, 재판 관련 기록(상고'항소이유서, 최후변론, 모두진술)들을 충실하게 모아 당시의 시대 상황을 그려냈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권인숙의 증언을 들으며 저들의 비인간적인 행위에 분노하고, 광주민중항쟁의 기록을 읽으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6월항쟁의 진행과정을 보며 벅찬 감동에 빠지게 된다.

저자는 또 김지하의 양심선언이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조작 발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에서 김현장의 자수에 얽힌 뒷이야기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사들도 공개했다. 민주화운동의 온갖 뒷바라지를 다했던 저자이기에 가능한 내용들이다. 여기에 당대를 상징하는 시와 시조들을 곁들여 딱딱한 역사서를 넘어 시대의 자서전을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민주화운동에 이바지한 사람, 군부독재에 앞장선 사람들을 가능한 한 꼼꼼히 기록해 시대와 역사의 준엄함을 일깨워준다. 저자는 민주화운동사를 화려하게 수놓은 사람들을 그려냄과 동시에 역사의 뒤편을 묵묵히 지켜온 이름없는 이들도 재조명했다.

구체적인 접근 방식과 재미난 뒷이야기, 그리고 이를 힘있게 서술한 저자의 문체로 인해 이 책은 민주화운동시대를 살아온 중장년층뿐 아니라 과거사에 관심이 적은 젊은 세대들도 충분히 공감할만하다.

우리는 지금 외형상 민주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민주화는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민주화운동 30년을 되돌아보는 초심의 기록이기도 하다.

김수환 추기경은 추천의 글에서 "김정남씨의 발길이 미치지 않고 손길이 닿지 않은 민주화운동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자신을 드러내 앞에 나서지도 않았고, 또 내세운 일도 없었다"고 했다. 또 김 추기경은 "이제까지 민주화운동의 과정과 그 내용이 개인적'부분적으로는 정리된 것은 있지만, 이렇게 전체를 조감한 책은 나오지 못했다"며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역사의 폭풍을 뚫고 수레바퀴 속에서 외친 이 나라 민주화운동의 산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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