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하면 못 참아요"

입력 2005-06-13 16:26:17

대구 정보 올림피아드 대상 지산중 김선규군

집에서의 시간 대부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자녀를 보는 학부모들은 결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컴퓨터를 이용해 공부를 하거나, 정보활용 능력이라도 늘렸으면 싶어 마련해 주었는데 막상 채팅, 게임 등에 온통 정신이 팔린 모습을 보면 차라리 치워버릴까 하는 짜증부터 앞서는 것. 컴퓨터는 결국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올해 대구시 정보 올림피아드에서 중학생 부문 대상을 차지한 김선규(15'지산중 3년)군은 컴퓨터를 더없이 좋은 약으로 이용한 경우다. 잠재성을 찾아내고 다른 과목 공부에 대한 흥미까지 일으켜준 고마운 존재다. 선규 군은 초등학교 5학년 때 한국 정보올림피아드에서 초등부문 대상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수학'과학'정보 분야 올림피아드에서 매년 수상 경력을 추가하고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수학 공식 하나를 써 보라고 하자 선뜻 고등학생들도 어려워하는 적분 공식을 손쉽게 유도해내는 선규 군을 보며 문득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볼 수 있었던 균형이론의 천재 '존 내쉬'가 떠올랐다.

▲내 사랑 수학·컴퓨터

선규 군은 "컴퓨터가 좋고 수학이 좋다"고 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고 수학문제를 풀 때는 몇 날 며칠씩 잠을 줄여가며 끙끙대도 마냥 즐겁다는 것. 한번은 어려운 수학문제를 5시간 만에 풀어내고 기쁨에 넘쳐 새벽 3시에 소리를 지르다 곤히 잠든 부모님을 깨운 적도 있다고 했다. 또래의 아이들이 연예인을 좇고, TV쇼와 드라마를 보며 즐거움을 찾을 때 선규 군은 어려운 문제를 풀어낸 뒤 찾아오는 쾌감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일주일에 영재교육원과 학원 6곳 등을 전전하며 12시가 넘어야 일과가 끝나는 고단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스스로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좀더 깊이 알고, 나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하는 공부인데 몸이 좀 피곤해도 어쩔 수 없죠."

끊임없는 궁금증 때문에 간혹 쉬는 시간이 생겨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책이나 신문 속에서 흥미거리를 찾으며 여유를 즐긴다는 것. 이런 선규 군의 습관 때문에 집에서는 아예 책을 책장에 꽂지 않고 온 방에 널어두고 산다. 선규 군이 원할 때 즉시 책을 집어들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잠재력 날개를 달다

선규 군은 영재교육원을 두루 거쳤다. 대구 동부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영재교육원에 다닌 것을 시작으로 경북대 영재교육원을 거쳐, 지금은 대구과학고에서 영재 교육을 받고 있다. 하지만 부모나 교사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지고 길러진 영재는 아니다.

아버지 김광중(51)씨는 "처음엔 말도 잘 못해서 글을 가르칠 엄두도 내지 않았는데 세살 때 어느 날 혼자 글을 읽고 있었다"며 "보통 아이들과 달라 병원까지 찾아갔는데 생각이 너무 많다 보니 말하는 속도가 생각을 따라가지 못해 말이 조금 더딘 것뿐이라는 진단을 받고 걱정을 놓았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컴퓨터를 접한 선규 군은 마침내 꿈틀대던 잠재성에 날개를 달았다. 원하는 자료를 마음대로 찾을 수 있고, 만들 수 있는 컴퓨터가 마냥 신기해 온종일 컴퓨터만 붙들고 앉아있었다. 그러다 보니 프로그래밍에 필요한 수학과 과학 공부에 대한 욕심도 늘어났고 여러 과목의 실력도 눈덩이처럼 부풀어갔다.

▲교육제도 속에 갇힌 부담

선규 군의 부모는 가끔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몇 분야에 탁월한 재능이 보이지만 대학입시에 대한 부담을 떨칠 수 없어 좋아하는 공부에만 몰두하기 힘든 교육 현실 때문이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행평가 등 돌아서면 시험이 이어지는데 각종 대회에도 욕심을 놓지 않으니 많이 힘들어하는 게 보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컴퓨터와 수학, 과학 공부에만 매달리게 해 주고 싶은데 교육 제도가 이러니 다독일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지금 선규 군은 부산 영재고 입학을 준비 중이다. 그곳에서는 적어도 좋아하는 공부에 마음껏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험을 한 달여 남겨두고 있는 지금은 학원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밥을 먹을 정도로 열심이다.

아직 장래 희망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여러 가지 길이 많아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황우석 교수처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업적 하나를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이다.

"처음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됐지만 요즘에는 물리와 화학에 큰 흥미를 느끼고 있어요. 서두르지 않고 가능한 여러 분야를 경험해본 뒤 제가 가장 빛을 발할 수 있는 한 분야를 선택할 생각입니다."

두꺼운 안경 속에 예리하게 빛나는 작은 눈, 이야기를 하다가도 문득 다른 생각에 잠겨들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은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아는 김군의 모습에서 장차 세계를 놀라게 할 푸른 꿈이 보였다.

글'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사진'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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