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중
◇ 줄거리
비가 추적추적 오는 어느 날, 인력거꾼 김 첨지에게 행운이 불어닥친다. 아침 댓바람에 손님을 둘이나 태워 80전을 번 것이다. 게다가 며칠 전부터 앓아 누워 있는 마누라에게 그렇게도 원하던 설렁탕 국물을 사줄 수 있으리라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려던 그에게 1원 50전으로 불러 세운 학생 손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아픈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지만, 이 행운을 놓치기 싫은 김 첨지는 손님을 여러 명 태우게 된다. 이 '기적'적인 벌이의 기쁨을 오래 간직하기 위하여 김 첨지는 길가 선술집에 들른다.
많은 돈을 벌었다는 기쁨도 잠시, 김 첨지에게 아내에 대한 불길한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얼큰히 술이 오르자, 김 첨지는 마누라에 대한 불길한 생각을 떨쳐 버리려 술주정을 하면서 미친 듯이 울고 웃는다. 마침내 취기가 오른 김 첨지가 설렁탕을 사들고 집에 들어온다. 무서운 정적이 감돈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이의 빈 젖 빠는 소리만 난다. 땀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른다. 김 첨지는 이년, 주야장천 누워만 있을 거냐고 하면서 발로 아내를 찬다. 반응이 없자 달려들어 머리를 흔들며 '이년아 말을 해라'고 소리를 지른다. 이러다가 흰 창이 검은 창을 덮은 눈을 보게 되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김 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비비대며 중얼거린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 * *
아침부터 구름이 끼인게, 정오가 지나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날씨가 이렇게 궂으면 아부지도 인력거 끌기 힘드실틴디.'
그런 생각에 미친 개똥이는 마루에서 일어나 대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급히 달리다가 좁은 골목길을 지날 때 하마터면 남의 집 담에 부딪힐 뻔하였다. 사람들이 제법 많은 곳에 나오자 저 멀리서 김첨지가 인력거를 끌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부지!"
개똥이가 부르는 소리에 김첨지는 돌아보았다. 그리고 얼굴을 펴서 웃었다. 김첨지는 기쁜 마음에 인력거도 제쳐두고, 개똥이에게로 달려갔다. 그 순간 개똥이는 등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조심하세요! 아버지!"
김첨지 바로 옆으로 말 한 마리가 이끄는 마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김첨지는 달려오는 마차를 보더니 마지막으로 개똥이를 향해 싱긋이 웃었다.
"아버지!"
개똥이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개똥이가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이틀 후였다. 개똥이가 깨어났을 때, 세상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그토록 자상하시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개똥이는 세상에 혼자 남았다. 모든 것이 아득했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도 개똥이는 가실 때의 아버지의 미소를 떠올렸다. 개똥이는 굳게 다짐했다.
'아버지도 내가 이렇게 주저앉길 원하지 않으실거여.'
개똥이는 그날부터 다 낡은 아버지의 인력거를 이끌고 길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간혹 몹시 바쁜 사람만이 개똥이의 인력거를 탈 뿐, 아무도 어린 개똥이의 인력거를 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날이면 개똥이는 일본 순사들의 구두를 닦고, 골목 여기저기에서 병을 주워 팔았다. 개똥이는 그렇게 살았다.
그로부터 수년 후, 개똥이는 이제 청년이 되었다. 여전히 가난했지만, 개똥이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혼인을 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도 하늘에서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색시로 동소문 안 부잣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는 순이를 데려왔다.
순이와 살림을 차린 후 둘은 도와가며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약간의 돈을 쥘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돈을 조금 가지게 된 개똥이는 예전과 달라졌다.
"에이, 이 오라질년! 도대체 집구석에서 뭐하는 거야! 집 꼬라지는 이게 또 뭐야 !"
개똥이는 날마다 술을 마시고 순이에게 행패를 부렸다.
"아니, 당신 도대체 왜 이러는 거요! 사람이 왜 이리 변했소!"
순이는 눈물을 삼키며 소리쳤다. 하지만 개똥이는 순이의 뺨을 휘갈겼다. 사람의 정신이 아니었다. 그런 날이 계속되었다. 밤만되면 술병을 물고 들어와 소리를 쳐대었다.
"아이고, 이년아!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알아? 아이고 불쌍한 우리 아버지. 쌀밥 한번 못 잡수시고 그놈의 일본놈 마차에 깔려 죽었어. 아이고…"
그렇게 화를 내어 소리를 치고 지난날을 통곡하기를 개똥이는 반복하였다. 그리고 방 한쪽 구석에서 벌벌 떠는 순이를 낚아채서 발로 차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 울분이 풀릴 줄 알았다.
아침부터 비가 구슬프게 내리는 날이었다. 어젯밤 횡포를 잊은 개똥이는 그날도 아무렇지 않게 인력거를 몰러 나가려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순이는 또 혼이날까 싶어 얼른 밥상을 가져다 주었다. 개똥이는 밥을 먹다가 문득 방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낡은 나무 궤짝 하나를 발견했다.
"아니, 저게 뭣이야?"
"오늘 아침에 마루 밑을 쓸다가 걸리는 게 있어 꺼내보니 저런게 있어서 들여 놨소."
순이는 괜히 꾸중을 들을까봐 몸을 움츠렸다.
개똥이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 않고, 밥을 먹다 말고 나무 궤짝을 집어 들었다. 들어보니 아주 가벼웠다. 흔들어보니 아주 작은 종이 소리 같은 것이 났다. 호기심이 생긴 개똥이는 궤짝을 쳤다. 던져서도 열려고 하였지만 잘 되지 않았다. 끝끝내 정지에서 칼을 가져와서 입구를 틀어제꼈다.
궤짝 안에는 낡은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펼쳐 보니 무슨 편지 같았다. 어렸을 때 어깨 너머로 조금 익힌 글씨라 더듬더듬 읽어 보았다.
"마누라…나…요. 김첨지. 이게 도대체 몇 년 만에 써보…는 편진지 모르겄소. 그래도 나보다… 조금 아는 치삼이 한테 여러 자 물어가며 편지를 쓰오. 지금까지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이. 젊었을 적엔 그렇게 고왔…는디. 당신이 아파서… 어찌하오. 개똥이를 위해서라도 어서 일어나야 할틴디?"
개똥이는 거기까지 읽고 더 이상 읽지를 못하였다. 자신이 지금까지 순이에게 해 온 것을 돌아보니 가슴이 미어질 듯했다. 개똥이는 잊고 살았던 것이다. 지난날 아버지의 사랑이 개똥이에게 큰 희망을 안겨다 준 것을. 개똥이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고 공연히 내리는 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순이가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나직히 속삭였다.
"미안하오."
강지예기자(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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