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삼덕동 문화 1가

입력 2005-06-13 08:35:04

'삼덕동 문화 1가'라고 불리는 그 거리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 아마도 1992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때 삼덕동 1가에는 10평도 안 되는 작은 카페와 중고음반 가게, 갤러리가 드문드문 있었다.

구제 옷 가게와 구멍가게, 싼값에 책을 살 수 있었던 책 도매상도 있었고, 몇 천원이면 가볍게 술 한 잔 할 수 있는 선술집도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지만, 그 한산한 거리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중고음반 가게에 앉아 소위 '다방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음악을 듣고 있자면, 외국의 어느 문화 거리도 이곳만큼 근사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들곤 했다.

삼덕동 1가를 드나들며 참 많은 것을 얻었다.

영화도 더 많이 보게 됐고, 좋은 음악을 원 없이 들을 기회가 많아졌다.

가장 귀한 것은 친구를 얻은 일이다.

낯가림이 심해서 친구를 쉽게 만들지 못했는데, 삼덕동에서만은 누구나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친구가 돼야한다고 강요하는 이는 없었지만, 이 골목이 좋아서 모여든 사람들이다 보니, 그냥 자연스럽게 친구가 됐던 것이다.

그 무렵 카페 주인과 손님으로 만났던 한 친구가 있다.

코딱지만한 실내에, 변변한 안주 없이 병맥주만을 팔았지만, 그 친구에게 그곳은 아주 특별했다.

카페를 처음 만들 때부터 자기 손으로 직접 벽돌을 쌓고, 페인트칠을 하고, 실내를 꾸몄으며, 한동안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손때가 묻은 카페이기에 훗날 다른 사람에게 넘긴 후에도, 삼덕동의 그 카페만 생각하면 아련한 기분이 저절로 든다는 것이다.

내게도 그 카페는 좀 특별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보다는 속상한 일, 슬픈 일이 있을 때 더 많이 찾았고, 그래서 그곳에 들어서면 누군가 내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까지도 삼덕동 1가는 나에게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열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20대 때나, 그때보다는 많이 지쳐버린 지금이나 삼덕동 1가는 늘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중고 음반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낡은 LP음악, 카페에서는 사람 냄새가 가득하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모두가 여유롭게 보이던 삼덕동 1가의 풍경. "소극장 하나면 있으면 완벽할 텐데…"라고 했던 어느 친구의 읊조림도 아련하게 들리는 것 같다.

대구MBC 구성작가 이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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