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찰스 만 지음/오래된미래 펴냄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구석기시대 이후 줄곧 원시 상태에서 살았다는 이론은 500년 넘게 학계를 지배해왔다. 이러한 시각은 인디언을 '수동적인 자연주의자' 또는 '고상한 야만인'으로 한정시켰다. 그러면 콜럼버스가 마주친 아메리카 대륙은 원시적인 야생 지대였을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디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걷어내고 인류학자·고고학자·생태학자·역사학자들이 발견한 새로운 증거물들을 바탕으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놀라운 비밀을 밝혀내고 있다. 수많은 문화인류학적 자료들은 한결같이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대륙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되고 발달한 문명사회가 존재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백인들의 등장으로 찬란한 문명이 철저히 파괴돼 그런 세계가 존재했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인디언들은 11세기 무렵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놀랍고도 다양한 문화를 탄생시켰다. 유럽이 중국이나 이슬람 문명의 영향을 받았던 반면 인디언들은 완전히 독자적인 문명을 이뤄냈다. 그들은 홍수에 대비해 거대한 흙 둔덕을 쌓아 올려 거주공간을 마련했고 둑길과 수로를 만들어 운송과 교통수단으로 이용했다. 초원 지대에 불을 놓아 나무의 침범을 막았고 질서정연한 마을과 도시를 대륙 곳곳에 건설했다.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물물을 교역했고 1천200여 개의 개별 언어와 천문학'수학'종교'문화가 싹트고 발전했다.
그들은 활발한 지식 교류를 통해 인도보다 1세기나 앞서 숫자 0을 발명했으며 역법을 비롯해 다양한 문자체계를 만들었다. 또 동시대 유럽보다 더 인구가 밀집된 체계적인 농경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의 발명품인 '검은 인디언 흙(테라 프레타)'에는 오늘날 오염된 토양을 치유할 수 있는 비밀이 담겨져 있다. 옥수수를 비롯해 오늘날 전세계 식탁 위에 오르는 곡물의 5분의 3이 그들의 땅에서 처음 경작되었다.
인디언 사회는 정부의 권력을 제한하고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오래된 전통이 있었다. 그것은 당시 유럽과 아시아를 지배했던 전제 정치와는 달리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정치제도였다. 당시 유럽에 비해 여성의 위치가 높았던 인디언의 사회체제는 미국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으며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는 인디언 문화는 미국 민주적 사상의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유럽의 질병에 거의 면역력이 없었던 인디언들은 천연두·선(腺)페스트·유행성 감기 등으로 백인들을 접촉한 지 130년 만에 95%가 목숨을 잃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구통계학적 참사였다. 저자는 고도의 인디언 문명 사회를 멸망시킨 것은 백인들이 주장하는 강철 무기 때문이 아니라 전염병이 그 주된 원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백인들은 신대륙 발견과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을 전혀 개발되지 않은 야생지대로 묘사하고 인디언들을 야만인으로 몰아세우며 그들의 역사를 축소, 왜곡시켜 왔다. 침략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백인들은 1492년 이전의 아메리카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콜럼버스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의 붕괴는 인류 전체의 손실이었다. 인류사에서 가장 큰 공백을 채워 나가는 것은 학자들의 몫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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