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러 대구로"…원정관람 인파

입력 2005-06-09 10:55:13

(탐사보도)대구·경북 경계인(3)문화예술 불모지

대구 인근 시·군은 문화예술 불모지다. 턱없이 부족한 시설과 대구만 바라보는 의식, 행정당국의 쥐꼬리 예산 등이 얽혀 경계지역의 문화예술이 갈수록 대구에 흡수되고 있다.

◇경산

지난달 13일 저녁 경산시민회관. 무대엔 꼬마 수십 명이 나란히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있었고, 무대 앞에만 빼곡히 모인 부모들은 '아들, 딸'의 재롱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경산시민회관은 경산은 물론 대구지역의 학부모들에게 '재롱잔치' 공간으로 이름나 있다.

회관 한 공무원은 해마다 10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는 재롱잔치 일정이 꽉 차며 직원들도 밤 늦게 퇴근하기 일쑤라는 것.

1, 2층 788석 규모의 회관은 경산시에서 유일하게 일정 규모 이상의 공연이 가능하고, 소형 전시공간도 2개가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회관을 문화예술의 중심공간으로 보지 않는다.

지난해 회관은 공연 58회, 발표회 176회, 교육 141회, 전시회 182회, 결혼식 12회 등을 열었다. 하지만 속사정은 실망스럽다. 공연의 경우 거의가 어린이 영화 상영과 어린이 대상 소규모 뮤지컬이다.

발표회 역시 유치원, 초등생 발표 일색이며 민방위교육 등 각종 교육도 회관이 단골이다. 전시회도 거의가 동호회 수준. 연주회도 개인 발표회 위주이며 횟수는 13회에 불과하다.

경산시문화원 강승우 사무국장은 "회관의 경우 시설 규모도 작고, 낡아 22만 시민들이 즐기기에는 수준이 떨어진다"며 "이에 걸맞은 공연과 전시회를 유치할 수 없고, 지역의 문화예술인들로부터도 외면당하는 현실"이라고 했다.

한국예총 경산지부 김상연 사무국장은 "경산에서 문화예술을 논하는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한마디로 경산에는 문화예술이 없다"며 "갈수록 대구에 예속되고 있고, 시민들을 경산에 붙잡을 능력도 없다"고 꼬집었다.

경산시는 지난해 사업비 400억 원,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종합문화예술회관을 짓기 위해 문화부에 국비를 요청했지만 부지 미확보 등을 이유로 보류돼 사업 자체가 불투명해졌다.문화예술 예산도 쥐꼬리다. 예산(축제, 체육대회 제외)이라곤 문화예술단체 보조금이 전부. 이것도 지난해 7개 단체에 5천여만 원을 지원했을 뿐이다.

지난해 문화예술인들은 경산시의회를 방문, 큰절까지 하며 의원들에게 문화예술 예산 확대를 읍소했지만 의원들은 면담조차 거절했다. 도로 등 당장 투자해 성과가 나타나는 사업 예산이 우선이라는 것.

또 22만 시민 중 경산이 뿌리라는 사람보다는 베드타운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따라서 큰 공연은 물론 경산에서 충분히 관람할 수 있는 공연까지 승용차로 20, 30분 거리의 '대구의 것'을 보고 있다.

◇칠곡

칠곡군 북삼읍에 사는 장희선(38)씨 등 주부 3명은 지난해부터 유명 공연 관람을 위해 곗돈을 모으고 있고, 매달 한 차례 대구에 나가 문화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칠곡 북삼읍과 석적면 등지에는 이 같은 친구, 가족 단위의 '문화 모임'이 많다.

최근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칠곡엔 도내 다른 지역과 달리 30, 40대 젊은층이 대거 이주해 오고 있다. 이에 따라 문화 욕구는 높아지고 있지만 문화 인프라는 절대 부족하다. 결국 주민들은 문화 공간을 찾아 대구로 떠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칠곡 출신 문화예술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미술 전시 공간이 없어 개인 전시회라도 열려면 대구를 헤매야 한다. 칠곡 미술협회도 지난해 6월 창립 전시회의 전시 공간을 찾지 못해 군 복지회관 복도에 임시 전시장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칠곡 미협 이우봉 회장은 "칠곡 전체에 걸쳐 조각품 하나 발견할 수 없다"며 "이런 곳에 어떻게 지역 문화가 존재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영천

영천의 문화예술도 '공간', '사람', '돈' 부족에 허덕이고 있었다.영천내 전시· 공연 공간은 영천시민회관, 청소년수련관, 시문화원이 유일하고 그것도 절름발이 시설이다. 세미나, 공청회 등 다목적용으로 15년 전 지은 영천시민회관은 음향반사판 같은 기본 인프라도 갖추지 못했다. 소리가 양쪽으로 모두 빠져나가 관중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것. 오케스트라 초청은 아예 불가능하고 간단한 관악, 성악 연주나 반주 없는 오페라만 가끔 열린다.

극장도 없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2, 3개가 운영됐지만 인구 감소에 따라 폐업했다. 이에 따라 주말마다 시외버스정류장은 대구 시내 극장가로 몰려가는 학생 인파로 넘쳐난다.

한국예총 영천지부 김정희 사무국장은 "미술 전시공간도 시문화원의 20평이 전부"라며 "면사무소 민원실, 시청 로비 등을 찾아다니며 '떠돌이' 전시회를 여는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전시·공연 문화를 주도할 문화예술가 확보도 어렵다. 영천은 지난 2003년 도내 9개 시 중 가장 늦게 한국예총지부를 설립한 곳으로 지역 출신 문화예술가가 부족하다. 300명에 이르는 예총 회원 중 영천 출신은 절반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구, 포항, 구미에서 영천으로 출퇴근하는 초·중·고 교사들이다.

영천음악협회 백종걸 사무국장은 "음악회 한 번을 열더라도 같은 사람만 나올 수는 없지 않으냐"며 "대구에서 성악가, 연주자들을 초청하고 있지만 늘 돈이 부족한 형편"이라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이종규·이상준기자 대구권팀 이홍섭·강병서·김진만·정창구·이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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