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과거 로마는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고 오늘날의 독일 지방까지 쥐락펴락했던 대제국이었다. 신화의 흔적을 찾아나선 지 25일째, 기행의 마지막 종착지는 바로 로마다.
종착역을 뜻하는 떼르미니역에 내리니 로마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장구한 세월의 묵은 때가 켜켜이 앉아있기 때문일까. 로마의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의 황색 건물들 일색이다.
로마와의 첫 대면에 탐색전을 벌이는 사이 낯익은 영화 광고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망치 하나 들고 산발한 머리로 노려보는 영화배우 최민식. 지난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올드보이'다. 작품성과 배우들의 호연을 강조하며 로마 번화가 한가운데에 자리한 우리 영화광고! 여독에 지친 몸에 갑자기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마치 영화배우 최민식이 내 친한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막 자랑하고 싶어진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태리 사람보다 여행자들이 더 많아 보인다. 한국영화를 홍보하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다. 카메라를 꺼내 광고판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셔터소리에 사람들이 돌아보기에 포스터를 가리키며 짧게 한마디 했다. "코리안"이라고.
숙소에서 간단히 짐을 정리한 뒤 신화의 흔적이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는 포로 로마노로 발걸음을 옮겼다. 로마는 고대에서 중세로 이어지는 문화유산의 보고다. 과거 로마인들은 호전적인 민족성에도 불구하고 철학자나 예술인 같은 문화적 인재에 대한 예우가 남달랐다고 한다. 덕분에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흡수할 수 있었고 지금은 해마다 웬만한 나라의 인구 정도는 족히 되는 여행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고 한다.
포로 로마노의 중심에 들어서니 마치 내가 그리스로 다시 돌아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신화 속 신들을 경배하는 신전들이 고대 로마의 중심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만 로마식으로 바뀌었을 뿐 모습과 성격 그리고 신화의 내용까지도 그리스신화와 거의 동일하다. 그리스가 신화의 원조이자 스승이라면 로마는 가르침을 착실하게 학습한 순한 제자 같다는 느낌이다. 로마의 건국자인 로물루스와 레무스 역시 그리스 신화 속 베누스(그리스에선 아프로디테)와 마르스(그리스에선 아레스)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신격화함으로써 로마 건국의 차별성과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포로 로마노에는 연중 학생들의 발길이 끊기는 날이 거의 없다고 한다. 선생님과 함께 이곳을 찾은 학생들은 생생한 역사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시간의 흔적들을 느끼고 배우고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좁은 교실에 갇혀 거의 전투적으로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부럽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의 대열 끝자락에 섞여 몇걸음을 옮기니 유적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관람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한 채 오직 작업공간만 통제하고 작업과정은 완전 개방되어 있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유적들을 보며 이 곳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금 서 있는 이 곳이 얼마나 고귀한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자연스레 깨닫는 것 같다.
신화 기행을 로마에서 마무리 한다는 건, 신화시대는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끊임없이 발견되는 그 흔적들처럼 우리 문화 속에서 살아남아 이어지게 될 그 생명력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강건해(방송 작가)
★다음주부터는 여행 독자이벤트의 4번째 주자 김상규(25'대구 수성구 만촌1동)씨의 '유럽의 술 문화'가 이어집니다.
사진: 과거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 있는 포로 로마노의 전경.(사진 위쪽)로마 시내에 영화 '올드보이'를 홍보하는 광고판이 줄지어 서 있다. 포로 로마노에 있는 베스타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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