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정신적 행동의 장소'라는 뜻을 담은 '상아탑'으로 불리어 왔다.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어원이 말하듯이, 대학의 전통적 개념은 교육·연구·봉사 기능을 중심으로 한 '진리 탐구의 전당'이다.
하지만 대학들이 상아탑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학문에 정진하고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교수들이 적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여건이나 풍토가 크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는 학문 탐구보다는 졸업한 뒤 일자리 만들기가 최우선 목표요 과제다.
연구실을 지키기보다는 돈이나 보직에 신경을 쓰는 교수들이 느는가 하면, 연구비 유용과 착복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사례들도 빈발하고 있다.
심지어 연구비는 '눈먼 돈'이라는 말이 나돌고, 그 유용이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비판의 소리까지 나오는 판이다.
오늘의 세태에 비춰 대학들이 상아탑으로 남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지식 기반 정보사회는 급변하는 발전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능과 역할을 끝없이 요구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가치관의 흔들림에 있지 않나 싶다.
누군가 대학생을 '실용파' '고시파' '흥청망청파'로 나눈 바 있지만, 이 분류대로라면 대학은 이미 순수한 학문의 전당이라고 보기 어렵다.
인문학이 죽어가고, 기초학문이 뿌리째 흔들려온 지는 이미 한참이나 됐다.
게다가 학벌사회는 일류대 지상주의로 치닫게 하다가 요즘은 모든 대학의 의대·치대·한의대 선호 추세로 돌아선 모습이다.
우리나라가 성장을 거듭해온 저력은 극성에 가까운 교육열에서 나왔는지 모를 일이기는 하다.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세계에서 대학생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되기도 했다.
대학이 358개, 학생은 무려 355만여 명에 이른다.
진학률도 81%로 미국(63%)과 일본(49%)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그게 또한 큰 문제다.
대학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숫자를 늘려온 결과, 입학 정원이 고교 졸업생 수를 넘어서 버렸다.
백화점식 학과 신설이나 외형 키우기에 골몰한 나머지 교수 한 명에 학생 수는 고교의 두 배가 넘는다.
대학이 급기야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하는 곳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제 경쟁력이 약한 대학은 '학생 모시기'에 전전긍긍하고 있으며, 경영이 부실한 대학들은 존폐의 기로에서 온갖 살아남기 편법을 동원하는 형국이다.
정부는 이제야 대학 몸집 줄이기에 나서면서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그 처방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한 가지 예만 들더라도,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전문대학에 다시 진학하는 경우가 갈수록 늘어난다는 건 무얼 말하는가. 이 지구촌 어디에도 없을 만큼 복잡한 대학 입시를 치르고도 4년이라는 세월과 막대한 교육비를 낭비한 뒤 취업을 위해 U턴하는 행렬이 길어지는 현상은 대학 교육의 취약점을 단적으로 말해준다고 봐야 한다.
전공 부적응증, 오직 시험 점수에 따른 '한 줄 세우기', 사회 활동과 취업에 도움이 안 되는 대학 교육의 질과 내용 등이 빚은 결과가 아닐까.
이런 와중에 최근 대구·경북 지역 대학들의 부패·비리 소식을 들으면서는 부끄럽고 민망하기 이를 데 없다.
일부 대학에서 일어난 일이기는 하나, '부패와 비리의 잡화점'을 방불케 할 정도다.
억대의 돈 주고받기 교수 임용, 교비나 국고지원금 횡령, 연구비 유용, 수익금 허위 계상, 학교 건축 비리, 고위관리 매수 등으로 부패 양상은 그 끝이 안 보일 지경이지 않은가.
그 가장 무거운 책임이 대학 자체에 있음은 말할 나위조차 없다.
편법 경영이나 비정상적인 교수 만들기와 교수되기로 대학 교육이 바로서고 경쟁력을 갖추기를 바란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그런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피해자일 수 있으며, 우리 사회·국가의 불행과도 무관하지 않다.
실로 상아탑이 낭패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대학은 여전히 '진리 탐구의 전당'이자 '지성과 양심의 최후 보루'여야 한다.
사회와 국가 발전, 나아가 국제 경쟁력까지 이끌어내는 산실과 원동력이 돼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나라의 장래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과 교수들마저 돈에 눈이 어둡고, 도덕 불감증이 심각하다면 정녕 큰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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