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력 기르기

입력 2005-06-06 11:27:00

현대는 표현의 시대이다.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서 표현력은 필수적인 생존 도구이다. 자신의 생각을 말이나 글로 적절하게 표현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앞으로 어쩌면 일종의 장애인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그러나 표현력은 단기간에 벼락치기 방식으로는 길러지지 않는다. 평소에 올바른 자세로 읽고 표현하는 습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의 습관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표현력은 개인의 성장 환경과 가정의 분위기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어떻게 하면 어릴 때부터 책을 가까이하면서 읽은 것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할 수 있을까.

A씨는 대학 1학년생과 고2 자녀를 둔 주부이다. A씨는 큰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가족회의를 열었다. 가족회의의 방식은 이러했다.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 저녁에 네 식구가 과일이나 간단한 간식을 사이에 두고 식탁에 둘러앉는다. 가족 각자는 일주일 동안 자신이 읽은 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을 5부씩 복사해 와야 한다. 길이가 너무 길어서는 안 된다. 네 식구가 한 부씩 나누어 갖고 남는 한 부는 가족의 역사로 보관하기 위해 따로 모아 두었다.

이런 방식으로 가족회의를 할 때마다 각자는 자기가 고른 글을 포함해서 네 편의 글을 읽었다. 처음에는 서로가 권하는 글을 그냥 읽기만 했다. 억지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거나 토론을 하지는 않았다. 부담이 생기면 지속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큰아이는 한동안 아버지가 권하는 글을 재미없어했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자 아버지의 취향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아버지가 권하는 글을 오히려 즐기게 되었다.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토론이 이뤄졌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매달 단행본 한 권을 골라 읽은 뒤 독후감을 적어 와서 토론하기도 했다. 큰아이는 수능 언어영역에서 한 문제밖에 틀리지 않았고 원하는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A씨는 말한다.

"함께 둘러앉아 서로가 좋아하는 글을 같이 읽는 과정은 고차원적인 정신적 교감을 위한 의미 있는 의식입니다. 우리는 글을 읽을 때 서로의 표정까지도 소중하게 느끼게 됩니다."

B씨는 지금 대학 국문과 3학년생이다. 그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일기를 쓰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그림일기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장래 희망은 소설가. 지난해 어느 대학의 문예작품 공모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녀의 일기는 단계적으로 발전해왔다. 초등학교 때는 숙제 검사 때문에 일기를 썼다. 며칠간 모아서 한꺼번에 쓴 적도 많았다. 지금 보면 대부분이 짧은 단문인데 이때 사물과 사건을 간단명료하게 묘사하는 훈련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저학년 때는 주로 문학소녀로서의 다양한 독서 편력, 신변잡기, 밑도 끝도 없는 상념, 특정인이나 대상에 대한 맹목적 집착 같은 것들을 적었다. 이 시기에 정확하게 묘사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으며, 기존의 모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대상을 끊임없이 새롭게 표현하려 하면서 나름의 문체를 확립하게 되었으며 독창적인 표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고3 때는 수험 생활의 어려움을 기록하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다독이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일기장이 취재 노트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일기는 일상성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로 하여금 정신이 잠드는 것을 막아 깨어있게 해 준다. 일기는 정신의 카타르시스를 위해서 좋다. 일기는 학생에게는 최고의 표현력 배양 훈련이다."

C씨는 지난해 서울의 상위권 대학 법대에 수시모집으로 합격했다. 그는 논술 때문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논술 준비를 한 것은 아니다. 중3 때부터 날마다 신문 사설과 시론 등을 노트에 오려 붙이며 읽었다. 정리 방법은 이러했다. 대학노트를 펼쳐놓고 왼쪽에는 사설이나 칼럼 등을 오려 붙이고 오른쪽에는 사전이나 컴퓨터 등을 활용해 글에 나오는 중요 단어나 키 워드 같은 것들을 정리했다. 그런 다음 왼쪽 글에 대한 보충 설명이나 반론을 적었다. 거의 매일 정리를 했기 때문에 사회의 주요 쟁점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덕분에 논술문을 쓸 때 논거를 충분하게 제시할 수 있었다.

C씨는 요즘 여러 신문에서 제공하는 기획'특집 기사가 언어영역과 논술, 심층면접 등을 준비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고 말한다. 제시문이 고전에서 나와도 논제는 언제나 현실과 깊이 관련된 것이다. 신문을 읽지 않으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고 타당한 논거를 댈 수가 없다. 그는 신문 읽기도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표현력과 창의력을 기르려면

2008학년도 이후 대학입시에서는 논술, 구술, 심층면접과 같은 대학별 고사가 당락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전망이다. 논술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고. 구술과 심층면접은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논술이든 구술'면접이든 출제자가 해결하기를 요구하는 사항들에 대해 비판적이고 체계적인 검토를 거친 다음, 나름의 해결 과정을 논리적으로 서술하거나 진술하는 시험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제시문을 읽고 분석할 수 있는 독해력과 풍부한 배경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것이 독서이다. 그러나 책을 그냥 읽어서는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한다.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자세로 생활하느냐가 중요하다.

▷ 열린 마음으로 생각하기

열린 생각이란 자신이 옳거나 그르다고 믿는 사실이나 신념이 틀릴 수도 있다는 자세로 생각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여러 견해에 대한 진실성 여부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태도가 중요하다. 열린 마음이란 다른 쪽의 입장에서 논리적 타당성을 살펴보거나 상대방의 올바른 비판을 수용하는 자세이다. 마음을 열어 놓는 사람은 고정된 형식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언제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자세를 가진 유연한 사람이다.

▷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비판적 사고는 당연한 것, 자명한 것, 길들여진 것, 자연스러운 것, 정상적인 것, 금지된 것, 익숙한 것 등에 거리를 두면서 의심하고 저항하는 것이며, 그 이유를 묻고 또 묻는 것이다. 이런 비판적 사고는 인간으로 하여금 물질적'정신적으로 자유와 해방을 쟁취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어느 한 쪽에만 치우쳐 독단적으로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모든 것에는 다양한 측면이나 차원, 구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따져야 하는 것이다.

▷ 관계적으로 생각하기

세상의 모든 것은 관계의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어 크든 작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나 대상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어떤 대상에 접근할 때는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유기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을 취해야 한다. 관계에는 상호의존적 관계, 독립적 관계, 종속적 관계, 상하 관계, 내적 관계, 외적 관계, 인과 관계, 모순 관계 등이 있다. 문제가 되는 대상이 다른 것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따져보는 습관을 가지면 독창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된다.

▷ 창의적으로 생각하기

창의적 생각이란 타성이나 습관에 젖어 있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방향과 관점에서 대상을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대상을 새로운 방향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해 지금까지 던져왔던 질문의 방향을 바꾸고 상상력을 발휘할 때 가능하다.

▷ 현실적으로 생각하기

우리의 모든 추상적 사고와 관념은 현실과 연관될 때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아무리 그럴듯한 논리도 현실과 동떨어지면 공허해지기가 쉽다. 현실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 현실 속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바람직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여러 쟁점들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사진: 표현력은 어려서부터 다양한 독서를 바탕으로 여러 측면에서 생각의 틀을 넓혀갈 때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사진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초등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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