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왜관

입력 2005-06-02 15:38:52

평화, 그 뒤에 숨은 '전쟁의 상흔'

경북 칠곡군 왜관은 한국전쟁 때 강원도 철원의 '철의 삼각지대'와 함께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기념관과 전적비, 전투지역 탐방로 등이 있어 당시의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보훈의 달'을 맞아 자녀들과 함께 지난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 다부동전적기념관

중앙고속도로 다부IC에서 동쪽 아래 다부동고개가 시작되는 입구지점에 25m 높이의 기념비와 탱크 모양의 전적기념관이 6.25 당시 격전지였던 유학산을 바라보며 서 있다. 당시 미그15격추기로 명성을 날렸던 전투기를 비롯해 유도탄과 장갑차 등이 광장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 안에는 박격포, 로켓포, 소총 등 각종 화기와 노획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전쟁의 참상과 그날의 긴박함을 느끼게 해주는 각종 자료들이 비치되어 있다. 유학산 일대 유해 발굴 작업에서 발견된 숟가락과 물통, 칫솔 등 개인용품도 보인다.

기념관 한켠에는 50년 8월의 치열한 공방전이 끝난 후 이곳을 찾은 시인 조지훈이 지은 '다부원에서' 시비가 당시의 참상을 말해주고 있다.

# 유학산

당시 전쟁의 상흔을 느끼려면 유학산에 올라야 한다. 도봉사 절 뒤로 '6·25격전지 순례 탐사로'가 개설돼 있다. 유학산 일대는 대구의 북방 20여km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대구로 통하는 도로가 합쳐지고 왜관과 연결된 도로의 시발점이 되는 곳. 이 같은 지형적 여건 때문에 6·25 초기 낙동강을 도하한 북한군에 맞서 국군과 미군이 결사항쟁의 의지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약간 가파르지만 30분쯤이면 정상에 오른다. 경치도 그만이고 중간중간 벤치가 있어 쉬어갈 수 있다. 정상에는 1950년 8월 13일부터 9월 24일까지의 전황을 설명한 상황판만이 있을뿐 당시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영령을 위한 진혼곡처럼 울어대는 새울음소리만이 요란하다.

정상에는 팔각정자가 세워져 있다. 정자에 올라 바라보는 풍광은 가히 학이 놀다가 갈 만하다. 대구를 비롯한 영천'경산'군위'칠곡의 정기를 뿜어내는 팔공산의 우람한 모습이 보인다. 그 뒤로 대구 시내가 어렴풋하게 보인다. 북쪽으로는 구미시내와 낙동강이 금오산을 등지고 평화롭게 펼쳐져 있다.

힘이 남아있다면 다시 되돌아오지 말고 674고지를 넘어 다부동전적기념관으로 내려가면 된다.

# 왜관지구 전적기념관과 낙동강 철교

이 기념관은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 10여km 떨어진 석적면 중지리에 있다. 당시 대구를 지키기 위해 처절하고 긴박했던 낙동강 일대에서 벌어졌던 전투를 기념해 놓은 곳이다. 나이키유도탄를 비롯해 북한 보·포병 대대에서 사용한 직'곡사포, 항공기 등이 기념관 마당에 전시돼 있다.

전시관에는 당시 사용했던 북한 복장과 철모, 물통, 수통, 반합 등 개인 휴대품과 AK소총, 중국제 기관단총 등이 전시돼 있다. 또 폭파된 낙동강 철교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으며, 폭파된 다리를 채 건너지 못하고 희생된 많은 민간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보인다.

기념관에서 읍내쪽으로 2.3km 가면 '호국의 다리'로 명명된 낙동강 철교가 나온다. 총연장 길이 469m인 이 다리는 1905년 일본인이 건립한 것으로 6·25전쟁 시 북한군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8월 3일 밤에 다리는 폭파된다. 53년 휴전 후 나무다리로 임시 활용해 오다 93년 2월 전면 재보수해 현재 인도교로 활용하고 있다.

태어나면서 줄곧 왜관에서 질곡의 역사를 경함한 노숙렬(75·왜관읍 왜관리)옹은 "다리 폭파로 민간이 많이 희생됐다"며 "8월 초면 유달리 제삿날이 같은 집이 많다"고 했다.

# 구상문학관

칠곡군 왜관읍 낙동강변에 가면 문학의 향기가 난다. 2002년 10월 개관한 '구상 문학관'이 있기 때문이다. 1층 전시실에는 선생의 육필원고를 비롯한 300여점의 유품이 전시돼 있다.

화가 이중섭과 박정희 전 대통령, 운보 김기창 화백 등의 편지와 작품, 그리고 영어·불어·독어 등으로 번역된 선생의 시집도 전시돼 있다. 영상실에서는 시'강'을 낭송하는 선생의 육성과 화가 이중섭이 이곳에 머물며 단란한 선생의 가족을 보고 그린 'K씨의 가족'등을 감상할 수 있다.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2층 열람실에는 선생이 소장하고 있던 2만여권과 그와 교류해 온 인사들이 기증한 책이 비치돼 있다. 방문객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도록 항상 개방돼 있다. 옆에 마련된 사랑방에서는 시창작교실과 문화교실이 수시로 열린다.

문학관 한켠에는 구상 시인이 20여년간 살며 작품활동을 한 관수재가 복원돼 있다. 이곳은 화가 이중섭이 함께 살았던 것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 찾아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다부IC에서 빠져 나오면 동쪽 아래 다부동고개가 시작되는 입구가 보이고, 인근에 25m 높이의 기념비와 탱크 모양의 다부동전적기념관이 나온다.

◇다부동·낙동강 전투

다부동 전투는 6.25전쟁중에서 최대의 격전지였다.1950년 8월 5일 낙동강을 도하한 북한군은 2만 1천여명의 병력을 다부동 일대에 투입해 대구 점령을 노렸다.

군군과 유엔군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8천200여명의 병력으로 맞섰다. 8월 13일부터 12일간 정상 주인이 15번이나 바뀌는 328고지(석적면 포남리) 전투와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던 837고지(가산면 학산리) 탈환전 등 55일간 전투가 계속됐다. 이 전투에서 북한군은 1만7천500여명의 사상자를 냈고, 아군은 1만여명의 희생을 치렀다.

낙동강 전투는 1950년 8월 3일 왜관읍 주민들에게 소개령이 내려지고 탱크를 이용한 북한군 진격을 차단하기 위해 왜관 철교를 폭파함으로써 시작된다. 미 기병사단과 북한군과의 대결이었다. 8월 16일 미군은 26분간 B29 폭격기 98대가 출격해 960t의 포탄을 퍼부으며 승리를 겨둔다. 북진의 전기를 마련한 전투였다.

사진=박순국편집위원 toky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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