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후 걷고 싶은 도심 산책길

입력 2005-06-01 11:04:04

점심식사 후의 여유시간. 꽉 조여 맨 넥타이를 조금은 느슨하게 풀고 그냥 걸어보자. 대구 도심에도 잠깐의 시간을 내면 의외로 좋은 산책길이 많다. 5월도 지나고 6월이 왔다. 초여름, 신록의 싱그러움을 만끽하며 나만의 여유를 가지기에도 딱 맞는 계절이다. 느릿느릿 산보 삼아 걷는 산책이면 어떻고 잠깐 동안 빠져보는 사색이면 어떠랴. 빡빡한 하루 계획표에서 벗어난 한가함 아닌가. 금쪽 같은 점심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니만큼 후회하지 않을 도심 속 산책길을 살펴본다.

◇ 동산의료원 의료선교박물관

대구의 중심부에 있는 이곳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면서도 의외로 볼거리도 많은 곳이다. 계산오거리 쪽에서 언덕 위에 있는 제일교회를 지나면 동산의료원으로 들어가는 작은 쪽문이 있다. 동산맨션 오른쪽 사잇길로 들어가도 된다. 이 쪽문을 지나면 바로 왼쪽이 선교박물관. 오래전 선교사가 살던 이국적인 건물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보호수'라는 푯말이 붙은 사과나무가 반긴다. 70살이 된 이 사과나무는 미국에서 들여온 한국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의 2세 나무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의료박물관 앞 정원도 잘 꾸며진 숲으로 가벼운 산책에 안성맞춤이다. 이 건물은 1910년 경 미국인 선교사들이 거주하기 위해 지은 2층 주택이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에서 유행한 방갈로풍 건물로 지금까지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 건물 옆 정원 등나무 아래에 벤치가 마련돼 있어 조용하게 사색에 잠기기 좋은 장소다.

바로 옆의 제일교회 건물 옆쪽에는 '현제명 나무'가 자라고 있다. 수령 200년 정도인 이 이팝나무 아래서 대구 출신 음악가인 현제명이 악상을 가다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향교와 경상감영공원

대구 유림의 본산인 이곳도 도심에 자리잡고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여러 강좌가 이어진다. 향교의 계단을 올라 문을 들어서면 일단 분위기에 압도된다. 담배를 피우지 말 것, 술을 마시지 말 것 등 금해야 할 몇가지 주의사항을 적은 푯말이 유달리 커 보인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산책이나 사색에는 지장이 없다. 오른쪽의 명륜당을 지나면 대성전 옆쪽의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그 그늘 속에 벤치가 있다. 묵향 속에서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나올 만한 곳이다. 대구 도심 반월당에서 명덕네거리를 향해 가다 네거리서 좌회전해 200여m를 가면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경상감영공원은 낮에도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많아 조용한 곳을 찾는다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1997년 담장을 허물고 공원을 재조성하면서 산책로와 벤치 등을 마련해 복잡한 도심 속의 공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잘 정돈된 잔디광장과 무더위를 씻어주는 시원한 분수까지 있어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산보에 그만이다.

경상감영의 관찰사가 집무를 하던 선화당을 중심으로 경상감영의 정문인 관풍루와 관찰사 처소로 쓰던 징청각 등 옛 건물이 남아있어 아늑하다.

◇ 경북도청 세심원

관공서 안의 녹지공간. 대구 속의 경북인 도청 안에도 쉴 만한 곳이 많다. 특히 정문 오른쪽에 있는 세심원은 도청 뒷동산과 함께 인근 주민들이 많이 찾는 휴식공간이다.

세심원 아래쪽 주차장을 중심으로 도로변을 따라 잔디밭을 조성하고 히말라야시더, 느티나무 등 각종 나무를 빼곡하게 심었다. 정문 오른쪽에 늘어선 기념식수 광장은 언제 누가 심은 나무인지를 표시해둬 이것 자체로도 구경거리. 백일홍과 장미 등 각종 꽃나무가 있는 곳에 벤치를 마련해둬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이곳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소풍장소로도 잘 알려졌다. 주차장 끝쪽에 심어진 대나무 숲 앞에 놓여 있는 벤치가 명당이다. 대숲에서 나오는 바람이 오싹한 기운이 들 만큼 서늘하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사진=도심 속의 공원인 경상감영공원은 벤치와 산책로가 잘 갖춰져 있다.(사진 왼쪽)계산오거리 쪽에서 동산병원을 가로질러 언덕을 넘어가는 옛길. 3.1 독립만세운동 당시 학생들이 집결지로 모이기 위해 솔밭이던 이 길을 지난 것으로 알려져 '3.1 운동 길'로 이름붙여졌다.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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