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광장-내 탓이오

입력 2005-06-01 08:50:11

요사이 간간이 서울법원에서도 변론 건이 있지만 큰 걱정이 없다.

같은 날 서울과 대구에서 차례로 재판이 열릴 경우 오전에 서울 변론을 마친 후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고 내려와 오후에 대구 변론에 참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고속전철 KTX의 위력이다.

실제로 고속철 개통 이후 대구지역 호텔이나 관광업계는 호황을 맞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적어도 시간 개념으로는 지방이 수도권과 훨씬 더 가까워졌다.

그런데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기관 지방이전 사업과 관련해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10대 공기업 중 대구, 경북을 1지망 또는 2지망으로 희망한 기관이 하나도 없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경북은 한국토지공사와 도로공사만이 3, 4순위로 꼽았으며, 대구는 한국관광공사만이 4순위로 이전을 희망하였다고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때 '그야 대구, 경북에 여당 지역구 의원이 하나도 없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실제로 주위엔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 우선은 (어이없어) 말문이 막히고 만다.

그럼 제17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날 때까지 혹은 여당이 야당이 될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그때 다시 공공기관을 우리 지역으로 이전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작년에는 다른 시도와 비교해 외자도입에 있어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던 것으로 알려진 경북도가 올해에 들어서는 외자도입에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도 함께 들려온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전 국가적인 규모로 각 지방자치단체가 외자 유치를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고 전 세계적인 규모의 외국자본 유치 경쟁이 전투처럼 치열해졌다고 하지만 환경을 탓하기 전에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고민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예전에 누군가 대구로 가겠다고 손을 들었는데 그때 우리 중 누군가가 "너는 못났다.

왜 네가 오느냐. 누가 널 이리 보냈냐. 우리를 무시하는 거냐"는 생뚱맞은 소리를 해댄 것은 아닌가.

요즘 지역 경제는 침체 일로를 걷고 있지만 아무 걱정 없이 잘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다음 선거에도 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여의도로 가거나 자치단체의 장이 될 수 있으니 아무런 걱정이 없다는 식의 정치인들은 과연 누가 만든 것인가. 괜히 나서서 적극적인 실수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연공과 학연으로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으니 무리하지 말고 조심조심하자는 공무원들은 또 과연 누가 만들어낸 것인가. 이는 다름아닌 바로 우리들이다.

실패하는 사람은 그 탓을 남에게 돌리는 법이며 성공하는 사람은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의 작은 배려도 잊지 않는 법이다.

'뚝심'과 '깊은 정'으로 대변되는 향토의 정서가 본디 훌륭한 우리 민족 정서들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느 틈엔가 불순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그 본래의 뜻이 왜곡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우리들 누구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와 '남'들을 철저히 구별하는 뛰어난 선별력은 결국 우리를 안팎으로 옥죄고 있다.

우리가 싫다고 외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앞에 서 있는데도 '괜한 오해'라며 그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 우리, 더 이상 그 '남'들이 우리를 찾아올 리 없다.

최근 대구시는 행정자치부의 조직개편안을 모델로 팀제 도입을 골자로 한 조직개편을 도모하고 있다고 한다.

예상되는 적지 않은 조직 내부의 반발과 사회적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경쟁과 효율을 도입하고자 하는 이러한 노력은 때늦은 감마저 없지 않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 지역 침체의 중요한 한 요인에 대한 문제의식이 구체적으로 해결 의지로 승화돼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에 대한 경고는 차차로 예정된 다음 선거로 미룰 수밖에 없을 것이나 그때에는 반드시 우리의 인식과 행동이 예전의 그것들과 달라졌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우리라는 사실을 솔직히 고백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한다는 점이다.

늦었다고 깨닫는 때가 가장 빠르다. 강정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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